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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나혜석을 만나다 : ESC : 특화섹션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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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앞에 선 작은미미. 사진 작은미미 제공
타지마할 앞에 선 작은미미. 사진 작은미미 제공
타지마할은 17세기 무굴제국 5대 왕이었던 ‘샤 자한’이 14번째 자식을 낳다가 죽은 세 번째 왕비 ‘뭄타즈 마할’을 기리기 위해 만든 대규모 무덤이다. 완벽한 대칭인 이 아름다운 건축물은 인도의 랜드마크다. 1983년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극했다. 연간 800만명이 모여든다. 나의 생애 첫 타지마할 방문은 한창 부부싸움을 할 때였다. 죽은 아내가 그리워서 만든 무덤 앞에 서 있자니 그냥 숨만 막혔다. ‘죽고 나서 이러는 게 무슨 사랑이냐.’ 괜한 트집을 잡다가 결국 그날 밤 남편이랑 또 심하게 싸웠다.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았다. 몇 달 뒤 인도로 여행 온 친구의 소원은 죽기 전에 타지마할을 꼭 보는 것이었다. 내키지 않은 발길이었지만 큰맘 먹고 같이 출발을 했는데, 하필이면 안개가 자욱해서 시야가 20m도 확보되지 않았다. ‘역시 타지마할은 나와는 인연이 없어.’ 3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를 5시간 걸렸다. 하지만 놀라운 광경에 숨이 막혔다. 타지마할이 뽀얀 안개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나는 이곳이 천국이라고 느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도 있다. 이런 세계적인 명소가 2년 전 인도 주정부의 추천 관광지 목록에서 제외됐다. “인도의 문화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타지마할은 무굴제국, 그러니까 이슬람교도 왕국의 유물이니까 정통성이 없다는 거다. 타지마할이 있는 우타르프라데시주 총리는 인도 인민당(BJP) 출신으로, 엄격한 힌두교 근본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라고 한다. 그가 속한 당은 현재 인도의 수장인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속한 당이기도 하다. 인도 내 이슬람교도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에는 이슬람교도 이민자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는 종교 차별법도 제정되어서 유혈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이슬람교도 지역인 잠무캬슈미르주의 자치권을 65년 만에 박탈한 사건도 있었다. 소고기를 먹는다는 이유로 이슬람교도들이 힌두교도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 일도 있었다. 인도 내 이슬람교도들의 입지는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최근 알게 된 이스마트 추그타이라는 여성 작가가 있다. 1930년대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인데 사후에도 꾸준히, 2020년인 지금까지도 책 리뷰가 올라오는 이다. 그걸 보고 그의 책을 충동구매했다. 이슬람교도인 작가는 우르두어로 주로 이슬람교도 하층계급 여성들이 주인공인 단편을 썼다. 그의 이야기는 매우 자유분방하고 부도덕(?)하며 파격적인 구조에 반가부장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의 글을 통해 본 1930년대 인도 거주 이슬람교도 여성들의 지위는 지금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당시에는 이슬람교도를 향한 차별도, 여성에게 강요된 무조건적인 복종이나 차별도 지금만큼 심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 시절 관습과 차별을 자유의지대로 거부하며 사는 여자 주인공들을 보는 건 짜릿하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이스마트 추그타이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나혜석이 떠올랐다. 화가로 알려졌지만, 나혜석의 단편 소설 <경희>는 우리나라 최초의 페미니즘 문학으로 평가받는 수작이다. 그의 작품 <어머니와 딸>을 특히 좋아하는데 말장난 같지만 정곡을 찌르는 유쾌한 대화체가 일품이다. 이슬람교도가 차별받는 지금, 사후에 재조명받는 이스마트 추그타이처럼, 나혜석의 문학도 그런 날이 올까. 문득 이스마트 추그타이와 나혜석이 생전에 만났다면 얼마나 유쾌한 일들이 벌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문화권이지만, 결이 비슷한 소설을 쓰던 두 여자의 만남. 상상할수록 털이 쭈뼛 설 정도로 신이 난다. 타지마할은 우르드어로 ‘타지의 집·타지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이스마트 추그타이도, 나혜석도, 뭄타지 마할도, 자신들의 하늘 궁전에서 여전히 빛나는 이야기를 쓰고 있을 것 같다. 작은미미(미미시스터즈 멤버·뮤지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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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8, 2020 at 07:26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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