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창사 60주년 특집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2일 밤 방영
김만진 피디 “끝까지 주체적인 삶 살았던 인간을 기억하는 다큐”
MBC 창사 6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문화방송>(MBC) 김만진(50) 피디의 서랍엔 두개의 대용량 외장하드가 보관돼 있었다. 2019년 8월 세상을 떠난 이용마 기자(이하 이용마)와 한 인터뷰 등이 담긴 100여시간 분량의 촬영분. 혹시 원본이 손상될까 봐 사본까지 떠놨지만 언제 방영할지, 아니 완성할 수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었다. 3년간 마음속에 품어왔던 작업을 마무리 중인 김 피디를 최근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편집실에서 만났다. <문화방송>은 창사 60주년 기념 특집 다큐멘터리로 그가 연출한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를 2일 방영할 예정이다. 2012년 노조 홍보국장으로 공정방송 수호를 위한 문화방송의 170일 파업투쟁을 이끌다 1호로 해고됐던 이용마는 해직 기간에 복막암 진단을 받았다. 2017년 12월11일 복직일에 휠체어를 타고 딱 하루 출근했다. 그러니 이 다큐는 제목 그대로 그의 ‘마지막 리포트’인 셈이다.
MBC 창사 6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한 장면. 아내 김수영씨, 쌍둥이 아들 현재·경재와 함께 한 이용마 기자. 문화방송 제공
MBC 창사 6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한 장면. 가운데가 이용마 기자. 문화방송 제공
2018년 11월께부터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김 피디가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시한부 삶을 살던 로스쿨대학원생 송영균씨의 다큐 <내가 죽는 날에는>을 만들던 중이었다. “자신의 마지막을 주체적으로 맞는 사람을 통해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에스에엔스를 통해 송씨를 찾았는데 찍다 보니 주변에도 그런 사람 또 있지 않나 싶었어요. 바로 이용마 기자죠. 그도, 송영균씨도 자신들 다큐가 일종의 2부작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이용마와 함께 해직됐던 강지웅 피디가 섭외를 도와줘서 시작된 촬영은 다음 해 3월까지 20회차 정도 이어졌다. 이용마는 마지막까지 기자였다. 자신의 이야기에도 때때로 카메라를 들었다. 굳이 셀프카메라 촬영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힘없는 다수에 귀 기울이는 따뜻한 기사를 추구했던 언론인 이용마는 엘리트의 권력을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던 개혁가이기도 했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창비·2017)에서 그는 권력으로부터 언론이 독립하는 방안으로 국민대리인단을 통한 공영방송 사장 선출을 제안했다. 김 피디는 다큐에서도 이용마가 사회적 발언을 남기고 싶어했다고 말한다.
MBC 창사 6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한 장면. 아내와 함께 자신의 납골당을 보러 갔던 이용마의 모습. 문화방송 제공
MBC 창사 6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낮엔 떠날 준비가 다 된 것처럼 이성적으로 보이다가도 밤이 되면 감정이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눈에 보였어요. 어느 날 그만 찍자 하더라고요. 차마 강요할 수 없었어요. 그 이후론 아내의 생일 파티를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다며 지인들을 초대한 날 딱 한 번, 찍어도 좋다고 했어요.” 촬영은 끝났지만, 김 피디는 그와의 만남을 접을 순 없었다. 2019년 8월21일, 그가 세상을 뜨기 15시간 전에도 병원을 찾았다. 면역항암제 치료차 1박2일 입원할 때마다 따라갔던 아산병원 71병동. 직업 정신이 발동해서 카메라를 들고 갔지만 도저히 찍을 순 없었다. 결국 그해 3월 중순 촬영분이 마지막 영상이 되었다.
김만진 피디가 편집실에서 이용마 기자를 촬영했던 영상을 보고 있다. 김영희 기자
2일 방영될 다큐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의 색 재현 작업이 진행 중이다. 김만진 피디 제공
3년 전 촬영 분량만으로 다큐를 완성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지난 6월 파일럿 프로그램를 검수하는 책임피디를 하다가 현장 제작 피디로 복귀하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몇몇 장면이 또렷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너무 인상적으로 남은 촬영일이 있었거든요. 자신이 쉴 납골당을 아내와 함께 보러 갔던 날이나, 의사를 만나고 돌아오던 차 안에서 이야기를 하던 모습 같은 것들 말이죠.” 그날 이용마는 말했다고 한다. “얼마 남았냐는 질문에 의사 눈가가 촉촉해지더라. 묻는 내가 잔인한 거지. 그래도 알고 싶었거든. 그래야 준비할 수 있으니까.” 결국 김 피디는 주변 인물과 후일담 등 보충 촬영에 나섰다. 여러 언론인의 도움도 받았다. 2014년 문화방송이 상암동으로 이사한 얼마 뒤 텅 빈 여의도 사옥을 이용마와 정영하 노조위원장 등 해직자들이 찾았던 영상은 임유철 독립 피디가 제공했고, 최승호 <뉴스타파> 피디(전 문화방송 사장)와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의 감독 김진혁 한예종 교수도 자신들이 찍었던 영상을 보내왔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피디나 이용마의 ‘절친’ 동기 김민식 전 피디, 손석희·변상욱·정세진 등 언론인들이 인터뷰에 나섰다.
2018년 12월 김만진 피디가 이용마 기자의 집에서 함께 찍은 사진. 김만진 피디 제공
1999년 입사해 주로 다큐를 제작했던 김 피디는 2011년부터 4~5년간 제작국이 아닌 편성국에서 엠디로 일하다가 일산미래전략실로 ‘부당전보’ 당하는 고난을 겪었다. 2017년 6.10 민주화항쟁 30주년 기념으로 준비하던 다큐 <어머니와 사진사>는 김장겸 문화방송 사장 체제에서 제작이 중단됐었다. 하지만 휴가를 내 촬영을 이어간 끝에 2018년에 방영할 수 있었다. 5년 전 ‘촛불항쟁’의 기억이 멀어지고 언론에 대한 신뢰는 추락한 지금, 이용마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방송 환경이 너무 바뀌고 공정방송 화두가 사람들의 관심 밖이 된 것도 알아요. 이 다큐가 그런 이야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불과 몇 년 전 일이잖아요. 우리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진전돼왔다면 그건 그냥 얻어진 결과가 아니라 이용마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요?”
MBC 창사 6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MBC 창사 6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MBC 창사 6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김 피디의 다큐들은 섬세한 연출과 함께 인물과 주제에 맞는 인상적인 음악 사용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다큐 테마곡은 로드 맥퀸이 부른 ‘고독은 나의 집’(Solitude’s my home)이다. “수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알지만 그중 한둘이나 나를 제대로 알까”라는 가사다. 그는 이 다큐가 언론 자유에 대한 이야기이자 ‘존엄한 삶’을 살려고 했던 한 인간에 대한 기억이 되길 바랐다. 2일 밤 10시50분 방영. 김영희 선임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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