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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미술에서 '시적인 것'을 발견하다 - 한겨레

마종기, 나희덕 시인 나란히 예술 산문집 출간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마종기 지음/&(앤드)·1만9800원 예술의 주름들 나희덕 지음/마음산책·1만6000원
마종기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마종기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꽃 몇 송이를 키우는 볼품없는 꽃나무 화분이고 내가 평생 키운 꽃은 의사라는 내 생업과 밤잠을 설치면서 만들어낸 시 몇 편이 전부인데 그 꽃 화분을 이렇게 오래 편하게 살게 해준 흙과 비료와 단비 같은 물은 바로 내가 즐기는 음악 듣기고 그림 보기이고 독서이고 믿음이고 여행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마종기) “이 책은 문학이 아닌 다른 예술 언어에 대해 내 안의 시적 자아가 감응한 기록이다. 여기에 호명된 예술가들은 시대도, 장르도, 성별도, 국적도, 개성도 각기 다르다.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시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을 발견하게 해준 스승들이다.”(나희덕) 최근 나란히 나온 두 시인의 산문집 서문은 같은 이야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한다는 느낌을 준다. 마종기 산문집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과 나희덕 산문집 예술의 주름들>은 각각 표제로 내세운 ‘아름다움’과 ‘예술’에서 짐작하다시피 문학 이외의 다른 예술 장르를 대상으로 삼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두 시인은 물론 언어라는 질료로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문학인들이지만, 음악과 미술, 영화 같은 다른 예술 장르에서도 ‘시적인 것’을 찾아내는 일에 게으르지 않다. 경어체를 택한 마종기 시인의 글이 시인 자신의 삶에 좀 더 밀착해 있다면, 나희덕 시인의 글은 상대적으로 분석적이고 사회적이다. 마종기 시인은 군의관 근무를 끝낼 무렵 한일회담 반대서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고초를 겪고 1966년 추방되다시피 미국으로 건너가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첫 해에만 100명이 넘는 환자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생지옥” 같은 상황에서 도피하듯이 “시간만 있으면 시를 찾아서 그리운 모국어의 단어 속으로 깊이 뛰어들곤 했다.” 그런 점에서 “몇 해 동안의 내 의사 수련은 엉뚱하게도 내 문학의 확실한 물꼬였고 내 시의 본향이라고 할 수 있다”고 그는 술회한다. 타의에 의해 지속된 외국 생활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모국어로 시를 쓰는 한편 음악과 미술 등 예술을 즐기는 것으로 어려움과 외로움을 달랬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외국에 사는 게 힘들어서 시를 썼듯이 외로워서 더 음악을 많이 들었고 미술관에도 자주 갔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연주회장에 직접 찾아가서 생음악 듣는 기회를 만들려고 일부러 애를 썼고 거기에 시간과 돈을 기쁘게 할애했습니다.” 그렇게 미술관에 가서 본 자코메티의 조각과 엘 그레코의 그림, 자신의 첫 시집에 삽화를 그려준 장욱진 화백에 관한 회고며,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 공연을 한 뒤 “같은 성을 가진” 인연으로 만나서 인사를 나눈 첼리스트 요요마, 가수 루시드폴과의 인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프리마돈나 안나 네트렙코와 소냐 욘체바, 그리고 바그너의 대작 오페라에 빠져든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마종기 시인의 예술 취향은 부친인 아동문학가 마해송과 모친인 현대무용가 박외선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기도 하다. 1971년 가을 일본에서 월간지 분게이슌주>(문예춘추) 창간 편집진 중 한 명이었던 마해송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을 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그를 만나 했다는 말이 인상 깊다. “나는 지금 몸이 아프지만 당신이 온다고 해서 무리를 해서 여기 참석했다. 당신의 아버지가 젊었던 날 나를 살려주었다. 내가 슬럼프에 빠져 몇 해 동안 글을 못 썼는데 그 긴 세월, 당신의 아버지가 내 생활비를 아무 조건 없이 도와주었다. 그 덕에 내가 몇 년 후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다. 그걸 평생 잊지 못해 당신에게나마 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로부터 불과 반 년 뒤인 1972년 4월 가와바타는 돌연 삶을 마감했다.
나희덕 시인.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나희덕 시인.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주름은 골짜기처럼 깊어/ 펼쳐들면 한 생애가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 열렸다 닫힐 때마다/ 주름은 더 깊어지고 어두워지고/ 주름은 다른 주름을 따라 더 큰 주름을 만들고”(나희덕 ‘주름들’ 부분) 나희덕 시인의 예술의 주름들>에 인용된 시 ‘주름들’은 홀로된 어머니를 위로하고자 함께 바닷가에 갔을 때 사진기 앞에서 희미한 웃음을 짓던 어머니의 얼굴 주름들로부터 나온 작품이다. “렌즈 속 클로즈업 된 주름들에서 엄마의 생애 전체를 들여다본 것 같”았다고 시인이 말할 때, 그 주름은 들뢰즈의 주름과 연결되면서 상처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과 세계의 진실을 상징하는 표상이 된다. 시인의 어머니 얼굴 주름은 롤랑 바르트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며 쓴 애도 일기>, 그리고 사진작가 한설희가 90살 넘은 노모의 모습을 2년 동안 찍은 사진집 엄마, 사라지지 마>와 어우러지며 너른 울림을 준다. 어머니의 주름 이야기를 제한다면, 나희덕 시인의 산문들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직접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그는 음악과 미술, 영화와 연극 같은 예술 작품을 직접 체험하되 그로부터 가능한 한 일반적·보편적인 통찰을 끌어내고자 한다. 작품에 관한 시인의 설명은 만만치 않은 깊이를 지녀서 해당 분야에 대한 그의 오랜 천착을 짐작하게 한다.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글렌 굴드·조동진과 미술가 케테 콜비츠·마리 로랑생·윤형근,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짐 자무시·황윤 등을 다룬 그의 산문은 반듯하고 유려해서 읽는 맛을 더한다. “조동진의 노래는 아주 멀리서 온다, 바람이 멀리서 불어오는 것처럼. 일몰과 여명, 비와 안개, 눈과 진눈깨비 등 대기가 가장 아름다운 때의 빛깔과 냄새와 물기를 머금고 그의 노래는 불어온다.”(조동진) “색채는 또 다른 색채를 찢고 나오며 자꾸 말을 걸어온다. 색면들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틈은 마치 입술처럼 달싹거리고, 색면들 속에 숨어 있는 흔적이나 얼룩들은 눈물처럼 어룽거린다.”(마크 로스코)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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