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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한반도에서 사라질 첫 생물종…구상나무의 운명은?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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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현장
기후위기로 한반도에서 사라질 첫 생물종
구상나무의 운명은?

‘집단고사 전시장’ 된 한라산·지리산
뼈 앙상한 채 있거나 뿌리째 뽑혀
2년 새 탐방로 옆까지 ‘전면화’

기후변화로 한국특산종 멸종위기
한국정부 멸종위기종 포함 안 돼

생물다양성에 대한 전면적 분석
기후변화 대책으로 고려돼야

기후변화로 한라산 구상나무는 지구상에 이름과 존재를 알린 지 100년 만에 멸종의 내리막으로 접어들고 있다.
기후변화로 한라산 구상나무는 지구상에 이름과 존재를 알린 지 100년 만에 멸종의 내리막으로 접어들고 있다.
▶ 요즘 한라산에도 레깅스와 반바지 차림의 젊은 등산객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발길 너머엔 뼈만 앙상한 채 서 있거나 뿌리째 뽑혀 무더기로 쓰러진 나무들이 곳곳에 보인다. 100년 전 세계에 처음 알려진 ‘한국 특산종’ 구상나무들의 최근 모습이다. 이태 전 본격 관찰된 집단 고사가 2년 만에 탐방로 옆까지 버젓이 내려와 전면화했다. 종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의 현장 보고다.
해마다 더 빠르게 죽어가고 있다. 고산지역 생태계를 대표하는 구상나무의 집단 고사가 지리산과 한라산의 여러 봉우리로 확산되고 있다. 2010년 무렵부터 죽어가기 시작했고 2013년부터 떼죽음이 이어졌다. 2018년부터는 본격화됐다. 그해 봄 산림청과 전문가들이 지리산의 아고산대 생태계의 깃대종이었던 구상나무를 모니터링하면서 심각함을 생생하게 목격(2018년 6월9일치 기사 ‘목마른 나무들 잿빛으로 변하는 숲’)했다.
한라산 동부 사면의 구상나무들이 말라 죽은 모습. 남한의 아고산대 침엽수림 중 구상나무 서식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었지만 기후변화로 구상나무가 전부 죽어가고 있다.
한라산 동부 사면의 구상나무들이 말라 죽은 모습. 남한의 아고산대 침엽수림 중 구상나무 서식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었지만 기후변화로 구상나무가 전부 죽어가고 있다.
당시 지리산 정상 천왕봉·중봉 일대의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 등의 떼죽음이 하늘에서 한눈에서 확인됐다. 귀로 들었던 것과 눈으로 본 것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실감한 순간이었다. 기후변화로 고산침엽수인 구상나무들이 말라 죽고 있다는 보고는 있었지만, 지리산 생태계의 정점이자 한복판에서 전면적인 죽음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의 충격은 컸다. 그리고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 왔다. 2019년부터는 천왕봉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제석봉, 동쪽으로 하봉, 써리봉 등 지리산 동부의 주요 구상나무 군락에서 집단 고사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특히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모든 탐방로에서 떼죽음이 본격화됐다. 2019년과 2020년 두 해에 걸친 국립공원공단의 기후변화 모니터링과 산림청의 멸종위기 침엽수 실태 조사에서 모두 구상나무 떼죽음의 현실과 마주한 것이다. 2018년 조사 이후 2년 사이 집단 고사의 전면화 현상이 확인됐다. 2년 전만 해도 탐방로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장소에서 관찰됐는데 2년 사이 등산객들이 오르내리는 탐방로 옆에서도 집단 고사가 쉽게 목격됐다.
기후변화로 집단 고사 중인 구상나무는 제자리에 서서 죽어가거나 부러지고 뿌리 뽑히며 죽어간다.
기후변화로 집단 고사 중인 구상나무는 제자리에 서서 죽어가거나 부러지고 뿌리 뽑히며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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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녹색에서 뼈만 남은 갈색으로
2020년 7월 현재 지리산의 구상나무 군락은 멸종으로 치닫고 있다. 구상나무는 한 해가 다르게 더욱 빠르게 죽어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구상나무가 한반도 육지에서 기후변화로 사라진 첫번째 생물종이 될 것이다.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기후변화로 죽음의 대열에 들어서는 구상나무를 다시 모니터링했다. 국립공원공단과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등 공공기관과 녹색연합 등 민간단체가 협력하여 현장을 확인했다. 작년까지는 기관별로 각자 하던 작업을,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감이 커지면서 적응대책 마련을 위해 협력해서 하기로 했다. 지리산 동부의 천왕봉과 서부의 반야봉, 제주 한라산 백록담 일대의 구상나무 서식지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기후변화의 현장을 살피고자 올라간 한라산국립공원 탐방로에는 청춘의 발길이 넘쳤다. 작년부터 한라산을 찾는 사람이 눈에 띄게 젊어졌다. 평일에도 간소한 달리기 복장의 20~30대 남녀들이 산을 올랐다. 요즘 수도권의 이름 있는 산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레깅스나 반바지를 입은 청년들을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는 성판악 코스에서도 흔하게 마주쳤다. 탐방객은 젊어지고 있지만, 한라산 아고산대의 숲을 이루는 구상나무는 죽어가고 있다. 탐방로 양쪽의 구상나무숲은 고사목의 전시장이었다. 특히 한라산 백록담 정상으로 오르는 해발 1700~1800m 일대는 처참할 정도다. 이미 죽어서 앙상한 뼈만 남은 채 서 있거나,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서 쓰러진 나무들이 즐비하다. 이제 한라산에서 성한 모습의 구상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은 드물다. 그나마 온전한 모습의 구상나무는 진달래밭대피소 바로 위 1600m 일부에서만 보일 뿐이다. 한국의 백두대간과 국립공원 등 아고산대에서 서식하는 고산침엽수는 3종이다. 전나무류(속)의 구상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류(속)의 가문비나무다. 모두 주로 해발 1200m 위에서 자란다. 그 가운데 구상나무의 집단 고사가 가장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그 생생한 현장이 한라산 동부 사면의 정상으로 이어진 성판악 코스 일대다. 지리산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지리산 구상나무의 집단 서식지인 동부의 천왕봉·중봉·하봉과 서부의 반야봉 일대 모두 집단 고사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특히 산 정상부부터 해발 1500m까지는 성한 구상나무가 거의 없다. 죽었거나 죽어가는 구상나무뿐이다. 그나마 지리산에서는 세석평전 일부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지리산에서도 천왕봉을 오르는 탐방로마다 죽어가는 구상나무와 마주하게 된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코스 중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중산리 코스는 해발 1200m 근처부터 구상나무가 출현한다. 1500m 지점부터는 구상나무의 본격적인 떼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해발 1800m 전후 정상 바로 아래 탐방로 주변의 대규모 구상나무 군락은 죽음의 전시장처럼 변하고 있다. 2016년부터 군락 전체의 빛깔이 갈색으로 바뀌면서 서서히 고사의 징후를 보였다. 2019년부터는 고사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어 확연한 죽음의 빛깔인 갈색과 붉은색을 보였다. 구상나무는 상록수라 항상 짙은 녹색이다. 구상나무 집단 고사의 주요 원인은 겨울철 적설량 부족에 따른 봄철 건조다. 백두대간의 아고산대 침엽수인 구상나무는 1월과 2월에 내린 눈으로 4월 말 5월 초순까지 수분 공급을 받는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부터 적설량이 현격히 줄었다. 2015년 전후부터는 과거의 3분의 1 수준이 됐다. 한겨울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고산지역의 경우 지표면에 쌓인 눈은 구상나무의 뿌리를 추위로부터 지켜주는 보온재 구실을 한다. 눈이 적게 내리면 구상나무는 봄철 수분 공급 불량에 의한 스트레스와 동결 건조에 시달린다. 과거와 같은 양의 눈이 내린다고 해도 기후변화 탓에 증발 속도가 현격히 빨라졌다. 게다가 백두대간의 봄철 건조는 적설량 부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겨울과 봄을 거치며 수분 스트레스와 건조에 시달린 구상나무는 여름철 폭염과 태풍까지 덮치면 초주검 상태로 내몰린다.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연구원의 기후변화 아고산대 연구팀장 이나연 박사는 “기후변화가 구상나무 고사 등 아고산대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현장 상황을 항공 정사영상(비행기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보며 찍은 영상)과 위성영상 등으로 찍어 실태를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지리산국립공원의 천왕봉 인근 고산지역에 상주하면서 관찰 연구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도는 2013년 여름 태풍으로 구상나무가 집단 고사한 이후 제주도청 산하 세계유산본부와 한라수목원을 중심으로 고사의 원인과 피해 범위 분석을 하고 있다. 세계유산본부 고정군 박사는 “한라산이 세계자연유산이므로 구상나무의 고사도 세계유산 관리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고사 진행 모니터링은 물론이고 고산지역에서 종자를 채집해 묘목을 키우는 방법 등도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상나무를 비롯한 고산침엽수는 숲이 활엽수와 침엽수가 어우러져 있을 때보다 침엽수만 단일종으로 밀집되어 있을 때 떼죽음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라산 동부 사면 성판악 코스 일대, 지리산 동부 천왕봉·중봉·하봉과 서부 반야봉 일대 등이 남한에서 구상나무의 최대 집단서식지다. 그런데 이 세 곳의 구상나무 집단고사가 백두대간과 국립공원 전 지역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다.
건강한 구상나무의 열매.
건강한 구상나무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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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였는데
구상나무는 전세계에서 오직 한반도의 지리산과 한라산에만 서식한다. 특히 군사분계선 이남의 남한에서는 가장 높은 고도에서 살아가는 한국 특산종이다. 2020년은 구상나무한테 각별한 해다. 100년 전 조선의 한라산과 지리산에서 그 존재를 세계에 알린 해이기 때문이다. 영국인 식물학자 어니스트 헨리 윌슨이 1917년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를 채집하고 1920년 하버드대학교 식물연구소에 ‘한국의 제주도 한라산에서 서식하는 한국 특산종’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렸다. 이 땅에서 수만년 이상 살아온 구상나무가 국제사회에 정식 학명(Abies koreana)을 가진 식물로 처음 이름을 드러냈다. 이후 구상나무는 유럽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각광을 받았다. 나무의 키부터 수관부의 크기까지 크리스마스트리로 안성맞춤이다. 지금도 유럽에서 비교적 고가로 거래된다. 구상나무는 학명을 부여받은 지 100년 만에 멸종이 언급될 정도의 위기를 맞고 있다. 현재는 국제멸종위기 목록인 ‘레드 리스트’(red list)에 위기종으로 등록되어 있다. 1998년 ‘위기 근접종’(NT)에서 2013년 ‘멸종위기종’(EN)으로 상향조정되었다. 그러나 한국 환경부의 ‘멸종위기 및 보호종 리스트’에는 빠져 있다. ‘인위적인 훼손에 의한 멸종위기종만 리스트에 포함시키는 것이 원칙’이라는 이유다. 환경부는 ‘기후변화에 따른 멸종위기종 선정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생물다양성 관리에서 기후변화라는 전지구적 현실이 외면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을 한 몸으로 보고 있다. 멸종위기종을 살필 때 기후변화를 최우선 사항으로 검토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청와대 환경비서관실이 기후환경비서관실로 바뀌었다. 그러나 환경부의 기후변화 적응 대책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시절과 달라진 것이 없다. 기후변화의 최전선인 자연생태계와 생물다양성에 대한 전면적인 관찰과 분석이 기후변화 적응의 핵심 중 하나다. 여기에 재해·재난이 더해져서 기후변화 적응 대책의 틀이 짜인다. 기후위기는 점점 우리의 삶으로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종의 멸종은 결국 인간의 삶을 포위하며 좁혀온다. 구상나무 멸종위기는 한반도 육지에서 나타나는 기후위기의 경고등이다. 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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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6, 2020 at 07:03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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