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사람들은 한결같이 ‘행복한 삶’을 꿈꾼다. 이 세상에 누가 행복을 마다하겠는가. 그런데 사람마다 행복을 설명하는 내용은 모두 다르다. 종교에서도 행복에 대한 기준이 다르며, 또 그 삶의 방식도 다르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매우 추상적인 행복이며, 지극히 물질지향적인 행복이기도 하다. 어느 날 사왓띠시에 부처님이 머물고 계실 때, 웃자야(Ujjaya)라고 하는 바라문이 찾아와 부처님께 인사올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이 내용은 ‘앙굿따라 니까야 웃자야의 경(Ujjayasutta)’(AN. 8:56)에 나온다.
[웃자야] 존자 고따마여, 저는 집을 떠나 거주하고자 합니다. 존자 고따마여, 저에게 저를 위하여 현세에서의 이익과 현세에서의 안락과 미래에서의 이익과 미래에서의 안락을 위해 가르침을 설해 주십시오.
[붓다] 웃자야여, 이와 같은 네 가지의 원리가 훌륭한 아들을 현세에서의 이익으로, 현세에서의 행복으로 이끕니다. 네 가지란 무엇입니까? 부지런함을 갖춤, 수호를 갖춤, 선한 벗을 갖춤, 올바른 생활을 갖춤입니다.
바라문 웃자야가 ‘집을 떠난다’고 한 것은 출가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 다른 곳에 가서 살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여쭙기 위해 부처님을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재가의 삶을 살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삶의 원리’를 말씀하신 것이다. 부지런함이나 수호, 올바른 생활 등은 그 구체적인 내용을 듣지 않아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바가 있다. 그러나 선한 벗을 갖춘다는 대목에 이르면, 선한 벗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우선 부지런함은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올바르게 생계에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수호란 부지런히 노력한 모든 재화를 잘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올바른 생활이란 사치하지 않고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잘 살펴 지출 관리를 하고, 재산의 손실을 야기하는 도박이나 여자, 술에 빠지는 것, 악한 벗을 사귀는 것을 피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럼 선한 벗이란 무엇일까.
[붓다] 세상에 훌륭한 가문의 아들이 마을이나 도시에서 살면서 거기서 장자나 장자의 아들, 젊지만 덕행이 성숙한 자와 연로하며 덕행이 성숙한 자, 믿음을 갖춘 자, 계행을 갖춘 자, 보시를 갖춘 자, 지혜를 갖춘 자가 있다면, 그들과 사귀고 대화하고 논의합니다. 이와 같은 믿음을 갖춘 자에게는 믿음의 갖춤을 배우고, 계행을 갖춘 자에게는 계행의 갖춤을 배우고, 보시를 갖춘 자에게는 보시의 갖춤을 배우고, 지혜를 갖춘 자에게는 지혜의 갖춤을 배웁니다. 웃자야여, 선한 벗을 갖춤이란 이와 같습니다.
선한 벗을 사귄다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선한 벗이 되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 ‘향을 싼 것은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것은 비린내가 난다’는 비유로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누구를 사귀는가는 나의 삶의 모습을 향기를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경문에서와 같이 선한 벗을 갖춘 자는 덕행이 성숙한 자이며, 믿음과 계행, 그리고 보시와 지혜를 갖춘 자를 말한다. 이들과 같이 사귀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로부터 덕행을 배우고, 믿음과 계행과 보시와 지혜를 배우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현세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행복인 것이다.
우리가 현재의 삶 속에서 세속적 ‘행복’을 얻기 위한 올바른 방법은 위의 네 가지이다. 사람마다 행복의 가치가 다를 수 있지만, 돈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고, 명예만으로도 행복할 수 없다. 스스로 올바른 삶의 방향성을 갖고 바르게 노력하고, 스스로를 지키고, 올바른 생활을 할 때, 충만한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선한 벗’을 가까이하고 배우는 것,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가르침이다. 나아가 내가 누군가의 선한 벗이 되고자 노력한다면 행복은 이미 나의 삶 속에 들어온 것이라는 가르침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601호 / 2021년 9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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