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나리 대구대 조교수 올해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뉴질랜드 오클랜드가 꼽혔단 소식에 안경을 고쳐 쓰고 짧은 기사를 두번이나 다시 읽어봤다. 매번 유럽 도시들이 상위권이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지형도가 바뀔 수도 있구나 싶어 내심 놀랐다. 영국 유수의 연구소에서 ‘안전성과 기반시설, 교육, 의료시설 접근성 등’을 수치화하여 평가한 결과라지만, 정작 키위(뉴질랜드인을 이르는 말)들은 우쭐하기는커녕 ‘믿을 수 없다’며 투덜대더라 친구가 전한다. 뉴질랜드는 천혜의 자연이 큰 자산인 나라이다. 인간 오염원으로부터 비교적 잘 보호된 야생의 자연은 전통적 ‘문화 강국들’이 따라잡기 힘든 자원이다. 여성이 최초로 참정권을 획득하고 강이 처음으로 인간과 똑같은 법적 권리를 부여받은 곳이며,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이 무참히 ‘쓸려버렸던’ 것과 달리 마오리어가 영어와 함께 공식 언어가 된 흔치 않은 전 영국 식민지이기도 하다. 재임 중 아이를 낳은 총리가 2019년 이슬람 사원에 대한 테러가 있었을 때 히잡을 쓰고 나와 혐오는 결단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 엄중히 경고했던, 내게는 언제나 맨발에 시원하게 닿던 풀과 검은 모래의 부드러운 감촉으로 남아 있는, 호빗의 나라이다. 하지만 내가 20년 전 경험했던 오클랜드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도시가 늘 그렇듯 주택난, 교통난, 주차난이 심각했다. 키위 친구와 하나하나 따져보니, 주택은 공급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투기상품화되어 가격이 비대하게 상승하였고, 근래 교사와 간호사들의 파업도 잦았다. 그래도 안전하진 않냐 하니 가정폭력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높은 편이라며 급기야 화를 참지 못한다. 내 기억에도 매주 내야 하는 집세가 살인적이었다. 대중교통은 비쌀뿐더러 노선이 좋지 않았으며 차가 고질적으로 막히는 구간들이 있었다. 왜 이리 비좁게 밀집해 있어야 하는지, 왜 조금만 벗어나면 그만 아무도 없는 것만 같은 ‘풍경’이 되고 마는지, 머릿속에서 수차례 도시를 허물었다 새로 지어보곤 했다. 한번은 누군가 내 고물 차의 창문을 부수고 오디오를 훔쳐 가 한동안 창에다 테이프를 붙이고 다녔다. 몇년 전 짧은 재방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역에 따라 그러한 가벼운 ‘우범지대’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었다. 좀도둑이 창궐하는 동네와 그렇지 않은 동네의 사람들은 서로 마주칠 일이 드문 그런 구조의 도시가 되어가는 듯하여 슬펐다. ‘그렇지 않은 동네’는 일면 살기 좋을 수 있다. 재작년 1위였던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그리고 서울에서도 대략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시의 그늘진 구석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순간들을 지속적으로 피할 수 있다면(간접적으로까지 피할 순 없을 거다, 연결되어 있으므로), 다시 말해, 어느 도시에서건 ‘살기 좋음’의 기준이 되는 지표를 배타적으로 누릴 수 있는 동력과 자원을 갖추었다면, 특히 올해는, 작년의 초강력 셧다운 정책으로 인해 더는 마스크가 강제되지 않는 ‘자유’에 매혹될 수 있다. 연구는 불완전할 뿐 아니라, 정확하고자 한다면 대상자, 즉 ‘누구에게’ 살기 좋은 것인지 솔직하게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 친구의 결론이었고, 일부 뉴질랜드 언론에서도 ‘의미 없는 난센스’라는 헤드라인이 바로 떴다. 빨간 머리 앤과 체로키 소년 작은 나무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서가 아니라, 숲속 그들만의 비밀 장소에서 마음을 키웠다. 일거수일투족을 염려하는 부모는 없었지만, 성장을 지켜봐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존엄을 위협받지 않는 상수리나무, 버드나무, 울새, 부엉이, 시냇물, 별, 달, 바람, 구름, 메추리, 두더지, 딱정벌레들이 있었다. 정치인의 수사와 공학자의 설계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찾아다니는 자본의 지표에는 다양한 존재들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곧잘 빠져 있다. 인간 중심의 위계적 도시 공간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들의 경이로운 조우를 이루어내는 장소, 공동체, 생태계에 대한 상상이 절실하다. 요즘 새로운 도시에 집을 구하려 발품을 조금씩 팔고 있다. 집이 좋을 필요도 없고, 학군을 생각할 일도 없는데다, 인구밀도가 높은 곳은 아니니 쉬울 것 같지만 실은 막막하다. 걸어갈 수 있는 시장과 침엽수림이 있는 동네,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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