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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만에 만났다, 다시 '단일팀'으로 대전에서 - 한겨레

[토요판] 남북탁구단일팀 코리아
④ 대전서 지켜진 ‘할름스타드 약속’

2018년 7월 대전 코리아오픈
북한, 개막 3일 전 참가 의사
단일팀 성사되고 이튿날 입국
합동훈련 기간은 단 2일뿐

북한의 순우리말 탁구용어
훈련 초반 이해하는 데 어려움
열정적인 응원과 관심 힘입어
예선 1차전 혼합복식 역전승

2018년 7월17일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의 첫 승을 이끌어낸 혼합복식의 유은총·최일이 경기가 끝난 뒤 기뻐하며 포옹하고 있다. 사진 임재근 제공
2018년 7월17일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의 첫 승을 이끌어낸 혼합복식의 유은총·최일이 경기가 끝난 뒤 기뻐하며 포옹하고 있다. 사진 임재근 제공
두달 전 남북단일팀이 27년 만에 극적으로 결성됐던 감동의 여운이 가시기 전, 대한탁구협회 실무진은 분주하게 코리아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 이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회 개막 3일 전인 2018년 7월14일, 유 위원은 국제탁구연맹(ITTF)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데인턴한테 전화를 받았다. “지금 막 북한이 코리아오픈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유 위원과 박창익 대한탁구협회 전무 등은 그해 5월 스웨덴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코리아오픈에서 다시 한번 남북단일팀을 결성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북한 탁구 실무진과 할름스타드에서 한 약속을 잊지 않았다. 서로 평양오픈과 코리아오픈에 초대하기로 한 약속. 이에 북한이 응답한 것이다. 2018년 두번째 남북단일팀은 남자복식 이상수(국군체육부대)-박신혁(북한), 여자복식 서효원(한국마사회)-김송이(북), 혼합복식 장우진(미래에셋대우)-차효심(북), 유은총(포스코에너지)-최일(북), 이렇게 4개 조로 구성됐다. 토마스 바이케르트 국제탁구연맹 회장은 예정에 없던 방한 일정까지 잡으며 남북단일팀에 힘을 실어줬다. 코리아오픈에서 남북단일팀의 남자팀 감독은 김택수 감독이, 여자팀 감독은 안재형 감독이 맡게 됐다. 김택수·안재형 감독은 모두 1980~90년대에 활약한 스타플레이어였지만 단일팀 경험에 있어선 차이가 있었다. 1991년에 은퇴한 안 감독은 그해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선수로 뛰지 못했지만 김 감독은 당시 단일팀 선수로 출전했다. 선수와 감독으로서 남북단일팀을 모두 경험한 사람은 김 감독이 유일했다.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에 참가하는 북한 탁구선수단이 2018년 7월1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에 참가하는 북한 탁구선수단이 2018년 7월1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의외로 마주친 ‘언어장벽’
“감아치기!” “깎아치기!” “밀어치기!” 북한 선수들은 대회 개막 이틀 전 입국했다. 단일팀 훈련 기간도 딱 그만큼이었다. 합동훈련 시간도 짧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언어’가 눈앞의 장벽으로 다가왔다. 탁구 용어가 문제였다. 탁구 용어를 영어 그대로 가져온 남한과 달리 북한은 순우리말을 썼다. ‘드라이브’를 ‘감아치기’, ‘라켓’을 ‘판때기’, ‘커트’를 ‘깎아치기’, ‘서브’를 ‘쳐넣기’라고 하는 식이었다. 용어의 차이 탓에 단일팀 선수들은 훈련 초반 서로의 용어를 이해하는 데 애를 먹었다. “처음엔 북한 탁구 용어를 알아듣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파트너가 된 효심이 누나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어 어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용어의 문제는 코리아오픈이 끝나서야 극복이 됐습니다.” 북한 차효심 선수와 혼합복식 단일팀을 꾸렸던 장우진 선수는 이렇게 회고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남북단일팀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합동훈련을 하면서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그런 관심을 받아본 게 처음이었습니다. 많은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려니 부담이 됐죠. 단순히 단일팀 한다는 것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관심 안에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기대감이 담겼을 수 있으니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장우진이 말했다. 평소 장난기 많은 그였지만 한 팀이 된 북한의 차효심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효심은 친한 사람들에겐 웃음 많고 말도 많았다. 직설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는 것이 그만의 매력이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관계에선 낯가림이 있어 장우진과의 첫 만남에서 데면데면한 모습을 보였다. 한 팀을 이루고도 어색해하는 상황에서 보다 못한 김택수 감독이 나섰다. “네가 동생이니까 먼저 다가가라, 우진아!” 김 감독은 차효심과 멀찍이 떨어져 앉은 장우진에게 말했다. 감독의 말에 용기를 얻은 장우진이 차효심에게 쭈뼛쭈뼛 다가갔다. “제가 동생이고, 누나니까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큰 용기를 낸 한마디였다. 어색하게 시작한 둘의 관계는 훈련과 시합을 거치며 가까워졌고 서로의 탁구 스타일에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남자복식으로 북한 박신혁 선수와 한 팀을 이룬 이상수 선수는 이전 세계대회에서 그와 몇 번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었다. 두 살 차이인 두 사람은 단번에 형·동생 사이로 정리가 됐다. 경기 스타일도 상호보완적 관계였다. 이상수는 날카로운 공격력을 가졌고 왼손잡이 전형인 박신혁은 움직임이 좋았다. 이상수가 상대의 약점을 노려 공격에 나서면 박신혁이 뒤에서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었다. “북한 선수들은 기본기가 뛰어납니다. 그런데 큰 대회 경험이 없다 보니 기술이 현대식으로 바뀌었는데 못 따라오는 부분이 있죠. 박신혁 선수는 공격적이면서도 탄탄한 플레이를 많이 해서 제가 작전을 짜거나 신혁이가 작전을 주거나 할 때 잘 맞았습니다.” 이상수는 박신혁과의 호흡을 이렇게 설명했다.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 시작을 하루 앞둔 2018년 7월16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남북단일팀 여자복식으로 함께 출전하는 서효원(오른쪽 첫째), 김송이(오른쪽 둘째)가 연습 도중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 시작을 하루 앞둔 2018년 7월16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남북단일팀 여자복식으로 함께 출전하는 서효원(오른쪽 첫째), 김송이(오른쪽 둘째)가 연습 도중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훈련기간 짧았지만…응원의 힘
단일팀이란 계기는 비슷한 또래, 같은 경험과 고민을 공유하는 한국과 북한 탁구 선수들이 인간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판을 깔아줬다. 또 그 안에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한 팀이란 소속감은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접착제 구실을 했다. 2018년 7월17일 유은총-최일 혼합복식조가 대전 한밭체육관에 입장하자 관중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뜨겁게 환호했다. ‘통일응원단’으로 한데 모인 200여명의 관중은 “우리는 하나다”라고 적힌 펼침막과 한반도기를 흔들며 2018 코리아오픈 첫 단일팀 경기를 맞이했다. 최일-유은총 조는 스페인의 알바로 로블레스-갈리아 드보라크 조와 맞붙게 됐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따지면 스페인이 단일팀보다 앞서 있었다. 최일은 세계랭킹 154위, 유은총은 71위였고, 스페인의 로블레스는 54위, 드보라크는 87위였다. 시합 전 호흡을 맞출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혼합복식조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구석은 단일팀이란 특수성이었다. 단일팀을 응원하는 관중들의 관심과 응원은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더 반짝이게 하는 힘을 가졌다. “코리아오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본선 메인 경기장에 입장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스웨덴에선 단체전으로 다 같이 나갔다면, 이번엔 최일 선수와 둘이 같은 팀이 돼 경기장 안에서 인사를 했죠. 저와 최일 선수에게 관중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순간, 그때 경기장 안에서 같이 인사했던 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유은총은 이렇게 기억했다. 그리고 그 순간의 짜릿함은 경기를 뛰는 선수들에게 보이지 않는 힘을 줬다. 유은총과 최일은 당시 26살 동갑내기였다. 최일은 조용한 성격이어서 장난기 많고 짓궂은 유은총이 자연스럽게 팀 분위기를 이끌었다. 스웨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북한 김송이를 비롯해 여자 선수들과 친분을 쌓은 유은총은 북한 선수에 대한 선입견 없이 최일과 편하게 말을 놓고 지냈다. “최일 선수는 엄청 순박하고 훈련을 하는 데 있어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였습니다. 걱정이 되는 부분은, 저희 둘 다 오른손을 사용해 복식으로는 좀 불리한 상황이었죠. 연습을 하다가 각자 기술을 상의하고 사인도 만들긴 했는데, 경기 중에는 그게 서로 헷갈려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하자’ 하며 경기에 임했죠.”(유은총) 코리아오픈 개막일인 2018년 7월17일 밤 9시30분, 유은총-최일의 단일팀과 스페인의 예선 경기가 시작됐다. 두 선수는 각자의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등장했다. 안재형 한국 여자대표팀 감독과 리광일 북한 남자대표팀 훈련지도자(코치)가 함께 벤치를 지켰다.
2018년 7월17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 예선전에서 남북단일팀 혼합복식조 유은총(왼쪽)이 서브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7월17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 예선전에서 남북단일팀 혼합복식조 유은총(왼쪽)이 서브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극적인 역전승…얼싸안은 남녀북남
최일-유은총 조는 8-11로 1세트를 내줬다. 하지만 두 사람은 2세트부터 힘을 냈고, 10-9에서 한 점을 더 얻어 세트를 가져왔다. 응원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어진 3세트 중반, 최일의 연속 스매시가 득점으로 연결되며 경기장 분위기는 한층 뜨거워졌지만 다시 8-11로 졌다. 세트 스코어 1-2. 한 세트만 더 내주면 끝나는 상황. 관중석에선 “잘한다, 잘한다, 우리 선수 잘한다”, “최일, 힘내라, 유은총 와~” 같은 함성이 이어졌다. 단일팀이 점수를 따내면 커다란 환호가, 실점하면 긴 탄식이 새어나왔다. 관중석에 대문짝만하게 걸린 “우리는 하나다” 펼침막은 두 선수에게 기를 불어넣었다. 유은총이 실수를 해도 최일은 “괜찮아, 자신 있게 하자”고 토닥였다. 관중석의 응원과 두 사람의 호흡 덕분이었을까. 4세트를 11-9로 잡은 유은총-최일 조는 5세트마저 승리하며 역전승을 거뒀다. 5세트 듀스 접전 끝에 마지막 스매시로 승리가 확정된 순간, 관중석에선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남북단일팀의 코리아오픈 첫 승리였다. 이미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관중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 역전승으로 짜릿한 승부를 맛본 유은총은 본능적으로 최일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평소 조용한 성격의 최일도 함께 승리를 이끈 유은총과 감격적인 포옹을 했다. “이겼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합장에 저희 탁구대밖에 없었고, 모든 사람들이 저희만 보고 있었죠. 그리고 최일을 봤는데 너무 기분이 좋아서 팔을 딱 뻗은 거예요. 그리고 최일이 와서 안아줬죠. 나중에 사람들이 ‘여자 선수가 먼저 그렇게 포옹하는 게 어디 있냐’고 했는데 제가 ‘그런 게 어디 있냐, 그냥 좋으면 하는 거지’라고 말했죠. 그 순간 분위기에 심취했습니다.” 유은총은 가슴 벅찬 당시 상황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렇게 2018 코리아오픈 첫 단일팀 경기가 승리로 이어지며 남북 선수들의 분위기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 스포츠는 정치와 국경을 넘을 수 있는가. 30년 전인 1991년에 이어 2018년 또다시 남북 탁구 단일팀이 꾸려졌다. 그해 봄, 남북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난 직후였다. 30년 전 단일팀 선수들은 감독과 스승이 되었고, 그들의 제자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남북관계가 안개에 싸인 지금, 새 시대를 열었던 단일팀의 이야기를 다시 돌아본다. 이 기획은 영화사 명필름과 팩트스토리가 함께 했고, 명필름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 중이다.
김지나 작가·<뉴스핌> 기자, 공동기획 팩트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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