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남지은의 토요명작 리플레이
① 네 멋대로 해라
① 네 멋대로 해라
2002년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주인공 복수 양동근, 박성수 피디
복수와 경이 갔던 정류장서 만나
홍대 등 당대 청춘의 공간 담아
팬들 ‘성지순례’ 장소는 사라져도
옛 콘텐츠 다시 보는 시대 전설로
‘인생 연기’ 배우 양동근에겐 부담
“양동근이라는 이름은 올라갔는데
저는 불이 꺼져가는 느낌이었다”
2002년 방영된 <네 멋대로 해라>에서 복수로 출연한 양동근(오른쪽)씨가 드라마를 연출한 박성수 피디를 지난 3일 극중 촬영 장소인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 인근의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다. 당시 복수와 경이 만나는 주요 장소였던 버스정류장은 이제는 벤치와 표지판만 남아 바로 옆 정류장에서 촬영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2002년 홍대를 타임캡슐처럼 찍고 싶어” <네 멋대로 해라>는 소매치기 고복수(양동근)와 인디 밴드 키보디스트 전경(이나영)의 사랑이야기로,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팬덤’을 형성한 작품이었다. 이 버스정류장이 상징이다. ‘네멋 폐인’이라 불리던 팬들은 종영 뒤에도 버스정류장을 찾아 드라마를 향한 애정 넘치는 글귀를 써 붙이곤 했다. ‘복수야 건강해’ ‘경아, 복수야 잘 지내니?’ ‘여기는 네 멋 팬들의 안식처입니다’ 등등. 포스트잇이 너무 잔뜩 붙어 있어서 마포구청에서 떼어버리자 화가 난 팬들이 순식간에 복구시킨 일도 있었다. 박성수 피디는 “그 발걸음이 한 10년간 이어졌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2002년은 인터넷에서 정치토론이 벌어지는 등 커뮤니티가 활발해지던 때였어요. 그 영향으로 ‘네멋30’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더니 방영 중반부터 팬들이 촬영장에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원래 택시정류장이었던 곳을 버스정류장으로 꾸며 촬영했었다”는 이곳은 지금은 외형은 사라지고 버스노선 표지판만 세워져 있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복수와 경이 버스정류장에서 만나는 모습. 문화방송 <네 멋대로 해라> 갈무리
“지금 보면 미래는 더 멋져요” <네 멋대로 해라>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했던, 희소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청년이 웃는 연습을 하는 사연을 보고 2001년 기획했다. 박성수 피디는 “힘든 상황에서도 밝은 모습을 보이려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인상적이었고, 과연 내가 6개월밖에 살 수 없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뭘까, 연애가 아닐까 싶었다”고 말했다. 박성수 피디가 기획하고 직접 시놉시스를 쓰고 자신의 구상을 실현해줄 작가를 찾아 나섰다. 그는 “당시 작가를 일곱명이나 만났지만 내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하늘이 내려줬다”고 정리했다. “무작정 <문화방송>과 계약된 신인작가 명단을 놓고 공중에서 볼펜을 떨어뜨렸어요. 인정옥 작가 이름에 꽂히더라고요. 그래서 만났는데 마음이 너무 잘 맞았어요. 복수가 원 없이 연애만 했으면 했던 초기 기획에 인정옥 작가가 스턴트맨이라는 장치를 넣어 지금의 <네 멋대로 해라>가 완성됐죠.” <네 멋대로 해라>는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불편한 부분이 많지 않다. 옛날 콘텐츠를 다시 볼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대두되는 문제는 바로 당시 낮은 감수성에서 나온 차별적 발언들이다. 이 드라마에도 한동진(이동건)이 경에게 강제 뽀뽀를 하는 성추행적인 행동, “병신 될까 봐 그래” 같은 복수의 대사 등 지금 보면 논란이 될 장면은 분명 나오지만 상대적으로 적다. 특히 여성 캐릭터들이 시대를 앞섰다. 경은 사랑을 먼저 고백하고, 숨지 않고 담배를 피우고, 남자와 자본 적이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청순가련형 주인공이 사랑받던 20년 전임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다. 박성수 피디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래서 촬영장에서 의견이 갈렸어요. 여자 주인공이 어떻게 남자와 잤다고 말할 수 있느냐며 이 대사를 빼야 한다는 이들도 있었죠. 하지만 저와 작가, 주연배우인 이나영이 이렇게 가는 게 ‘네 멋다움이다’라고 밀어붙였어요.” 복수의 오랜 연인이었던 미래도 “나는 ‘치어걸’이 아니라 ‘치어리더’”라고 얘기하며 자신을 상품처럼 취급하는 시선에 맞선다. 경과 미래가 복수를 두고 경쟁하면서도 ‘언니애’를 드러내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공효진씨가 정말 잘했죠. 지금 보면 미래는 더 멋져요.”(양동근)
복수와 경이 누워서 서로의 발을 만지는 모습은 현장 애드리브로 완성됐다. 문화방송 <네 멋대로 해라> 갈무리
“시한부라도 살아줘” <네 멋대로 해라>는 간접광고(피피엘·PPL)로 억지스러운 장면이 넘쳐나는 요즘 드라마와 달리 보기 편안하다. 극 중 모든 장소가 요즘처럼 가상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장소와 연결되는 공간이라 그냥 그들은 홍대 어딘가에서 18년간 쭉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심지어 극 중 미래의 동료들도 실제 치어리더들이었다. 그런 경과 복수를, 미래를 시즌2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네 멋대로 해라> 마지막 장면에서 복수는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마치고 나오는 복수를 보며 경이 환하게 웃으며 끝났다. 복수는 죽은 걸까? 죽지 않은 걸까? “죽었다고 해요. 이제 이런 연기는 절대 안 나올 것 같으니까.” 양동근의 우스갯소리를 잠재우며 박성수 피디가 말했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거예요. 둘이 연애도 하고 싸우고 헤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계속됐을 겁니다.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시한부라도 살아줘, 오늘을 열심히 살라는 것이니까요.” 우리 안에서도 살아 숨쉬고 있는 복수와 경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대들이여, 계속 네 멋대로 살아라. myviollet@hani.co.kr
▶ <한겨레> 문화부 기자. 언제든 옛날 콘텐츠를 다시 볼 수 있는 시대. 세대불문 되감기하면 좋을 대중문화 작품을 소개하려 한다. 연출, 연기, 이야기 기본 3박자에 충실하면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옛 작품들이 콘텐츠의 본질을 일깨운다. 지금 시선에서 새 해석이 등장할지도. 제작진과 배우들의 비하인드 코멘터리도 담아보겠다. 3주에 한번 연재.
August 01, 2020 at 07:31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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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와 경은 어딘가에서 '네 멋대로' 살고 있을 것 같아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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