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복수와 경은 어딘가에서 '네 멋대로' 살고 있을 것 같아 - 한겨레

jabaljuba.blogspot.com
[토요판] 남지은의 토요명작 리플레이
① 네 멋대로 해라

2002년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주인공 복수 양동근, 박성수 피디
복수와 경이 갔던 정류장서 만나
홍대 등 당대 청춘의 공간 담아
팬들 ‘성지순례’ 장소는 사라져도
옛 콘텐츠 다시 보는 시대 전설로

‘인생 연기’ 배우 양동근에겐 부담
“양동근이라는 이름은 올라갔는데
저는 불이 꺼져가는 느낌이었다”

2002년 방영된 <네 멋대로 해라>에서 복수로 출연한 양동근(오른쪽)씨가 드라마를 연출한 박성수 피디를 지난 3일 극중 촬영 장소인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 인근의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다. 당시 복수와 경이 만나는 주요 장소였던 버스정류장은 이제는 벤치와 표지판만 남아 바로 옆 정류장에서 촬영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2002년 방영된 <네 멋대로 해라>에서 복수로 출연한 양동근(오른쪽)씨가 드라마를 연출한 박성수 피디를 지난 3일 극중 촬영 장소인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 인근의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다. 당시 복수와 경이 만나는 주요 장소였던 버스정류장은 이제는 벤치와 표지판만 남아 바로 옆 정류장에서 촬영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지난 7월 초,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노인종합복지관 앞 버스정류장에 두 남자가 섰다. 박성수 전 <문화방송>(MBC) 드라마 피디와 배우 양동근. 박성수 피디는 두 눈 가득 풍경을 담으며 가슴 벅차 했고, 양동근은 덤덤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성격처럼 표현은 다르지만, 두 사람에게 이곳은 최고의 마음과 만나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낸 인생플레이스란 점은 같다. “방송이 끝나고 1년 뒤인가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문득 내려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어요. 한동안 이곳을 지날 때면 복수와 경이 앉아 있을까 돌아보기도 했죠.”(박성수 피디) 복수와 경이 만나고 사랑하고 마음을 나누던 곳, 2002년 7~9월 방영한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문화방송) 속 바로 그 버스정류장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기는 했지만 방송이 끝나고 직접 온 것은 처음이네요.”(양동근) _____________
“2002년 홍대를 타임캡슐처럼 찍고 싶어”
<네 멋대로 해라>는 소매치기 고복수(양동근)와 인디 밴드 키보디스트 전경(이나영)의 사랑이야기로,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팬덤’을 형성한 작품이었다. 이 버스정류장이 상징이다. ‘네멋 폐인’이라 불리던 팬들은 종영 뒤에도 버스정류장을 찾아 드라마를 향한 애정 넘치는 글귀를 써 붙이곤 했다. ‘복수야 건강해’ ‘경아, 복수야 잘 지내니?’ ‘여기는 네 멋 팬들의 안식처입니다’ 등등. 포스트잇이 너무 잔뜩 붙어 있어서 마포구청에서 떼어버리자 화가 난 팬들이 순식간에 복구시킨 일도 있었다. 박성수 피디는 “그 발걸음이 한 10년간 이어졌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2002년은 인터넷에서 정치토론이 벌어지는 등 커뮤니티가 활발해지던 때였어요. 그 영향으로 ‘네멋30’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더니 방영 중반부터 팬들이 촬영장에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원래 택시정류장이었던 곳을 버스정류장으로 꾸며 촬영했었다”는 이곳은 지금은 외형은 사라지고 버스노선 표지판만 세워져 있다.
&lt;네 멋대로 해라&gt;에서 복수와 경이 버스정류장에서 만나는 모습. 문화방송 &lt;네 멋대로 해라&gt; 갈무리
<네 멋대로 해라>에서 복수와 경이 버스정류장에서 만나는 모습. 문화방송 <네 멋대로 해라> 갈무리
경과 복수는 요즘 드라마와 달리 주로 버스를 타고 다녔다. <네 멋대로 해라>는 홍대를 중심으로 2002년 당시 청춘의 모습을 담고 청춘인 팬들과 공유한 청춘의 표상이었다. 극 중 복수와 경은 홍대 거리를 누볐고, 경의 직업은 당시 홍대를 중심으로 꿈틀대기 시작했던 인디 밴드 키보디스트였다. 고복수라는 옛 가수의 음반을 샀던 레코드숍, 복수의 오랜 연인이었던 송미래(공효진)의 옥탑방 등 홍대 곳곳이 드라마에 오롯이 담겼다. 복수가 소매치기하는 등 주요 장소로 나왔던 지하철 장면은 6호선 광흥창역이다. 박성수 피디는 “<네 멋대로 해라>에서는 공간을 굉장히 중시했다. 2002년의 서울 홍대를 타임캡슐처럼 찍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며 “당시 광흥창역이 막 개통되어서 사람들이 별로 없어 촬영이 수월했고, 버스 장면이 많아서 아예 129번을 빌려 촬영했다”고 말했다. “세트를 활용하지 않은 건 청춘의 사랑은 공간으로 기억되기 때문이었다”는 그의 바람처럼 지금도 홍대를 거닐 때면 복수와 경이 떠오른다고 ‘네 멋’ 팬들은 말한다. 팬들이 ‘성지순례’하듯 지도까지 그려 드라마 속 장소를 찾아다녔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특히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던 용산에 있던 복수 집은 재개발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미래의 옥탑방, 집 앞 계단, 버스정류장 정도만 남아 있다. 하지만 <네 멋대로 해라>는 사라지지 않고 18년이 지난 2020년 다시 살아 숨쉬고 있다. 아이피티브이(IPTV)에 이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오티티·OTT)가 등장하고 유튜브가 주요 매체가 되는 시대를 맞으면서 옛 콘텐츠를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박성수 피디는 “2002년 제작발표회 당시 이 드라마가 10년간 기억되면 좋겠다고 말했었는데, 이후 디브이디(DVD)가 생기더니 이젠 오티티까지 나와 제 바람이 이뤄졌다”며 감탄했다. 양동근은 “그저 이 모든 상황이 놀랍기만 하다”고 말했다. _____________
“지금 보면 미래는 더 멋져요”
<네 멋대로 해라>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했던, 희소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청년이 웃는 연습을 하는 사연을 보고 2001년 기획했다. 박성수 피디는 “힘든 상황에서도 밝은 모습을 보이려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인상적이었고, 과연 내가 6개월밖에 살 수 없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뭘까, 연애가 아닐까 싶었다”고 말했다. 박성수 피디가 기획하고 직접 시놉시스를 쓰고 자신의 구상을 실현해줄 작가를 찾아 나섰다. 그는 “당시 작가를 일곱명이나 만났지만 내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하늘이 내려줬다”고 정리했다. “무작정 <문화방송>과 계약된 신인작가 명단을 놓고 공중에서 볼펜을 떨어뜨렸어요. 인정옥 작가 이름에 꽂히더라고요. 그래서 만났는데 마음이 너무 잘 맞았어요. 복수가 원 없이 연애만 했으면 했던 초기 기획에 인정옥 작가가 스턴트맨이라는 장치를 넣어 지금의 <네 멋대로 해라>가 완성됐죠.” <네 멋대로 해라>는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불편한 부분이 많지 않다. 옛날 콘텐츠를 다시 볼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대두되는 문제는 바로 당시 낮은 감수성에서 나온 차별적 발언들이다. 이 드라마에도 한동진(이동건)이 경에게 강제 뽀뽀를 하는 성추행적인 행동, “병신 될까 봐 그래” 같은 복수의 대사 등 지금 보면 논란이 될 장면은 분명 나오지만 상대적으로 적다. 특히 여성 캐릭터들이 시대를 앞섰다. 경은 사랑을 먼저 고백하고, 숨지 않고 담배를 피우고, 남자와 자본 적이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청순가련형 주인공이 사랑받던 20년 전임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다. 박성수 피디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래서 촬영장에서 의견이 갈렸어요. 여자 주인공이 어떻게 남자와 잤다고 말할 수 있느냐며 이 대사를 빼야 한다는 이들도 있었죠. 하지만 저와 작가, 주연배우인 이나영이 이렇게 가는 게 ‘네 멋다움이다’라고 밀어붙였어요.” 복수의 오랜 연인이었던 미래도 “나는 ‘치어걸’이 아니라 ‘치어리더’”라고 얘기하며 자신을 상품처럼 취급하는 시선에 맞선다. 경과 미래가 복수를 두고 경쟁하면서도 ‘언니애’를 드러내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공효진씨가 정말 잘했죠. 지금 보면 미래는 더 멋져요.”(양동근)
복수와 경이 누워서 서로의 발을 만지는 모습은 현장 애드리브로 완성됐다. 문화방송 &lt;네 멋대로 해라&gt; 갈무리
복수와 경이 누워서 서로의 발을 만지는 모습은 현장 애드리브로 완성됐다. 문화방송 <네 멋대로 해라> 갈무리
박성수 피디는 “배우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이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회자되는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는 이들과 함께한 촬영 현장에서 나온 것들이 많다. 6회 마지막 순간에 경에게 “내가 좋아해도 되나요”라고 고백받은 복수가 7회 초에서 기뻐 죽는 심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공중제비를 돈다. 복수의 행복이 브라운관을 뚫고 시청자에게도 전해지는데 이 공중제비도 즉석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20회 복수가 삭발하는 장면, ‘네멋 폐인’들이 손꼽는 복수와 경이 누워서 서로의 발을 마사지해주는 장면도 현장에서 만들어졌다. 박성수 피디는 “대본에는 ‘발을 서로 주물러준다’였는데 거꾸로 누워서 발을 만져주면 애틋할 것 같았다. 배우들이 흔쾌히 오케이를 했고 심지어 경이 복수의 발에 뽀뽀하는 장면도 이나영의 즉흥연기였다”고 말했다. “당시는 나의 심장과 배우의 심장이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된 것 같았다”는 박성수 피디의 말에 양동근은 “제 안에 쌓여 있던 모든 에너지가 감독님을 통해 터지며 이 작품에서 모두 쏟아부을 수 있었다”고 화답했다. “양동근은 고복수를 하기 위해 태어났구나 싶었어요.”(박성수 피디) “감독님이 그러더라고요. 너는 지금 죽으면 제임스 딘이 될 거라고.”(양동근) 그래서 한편으로는 부담도 컸다. 종방 10돌을 기념하는 상영회까지 열릴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배우들에게는 이 이상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숙제가 어깨를 짓눌렀다. 양동근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양동근이라는 이름은 올라갔는데 반대로 저는 불이 꺼져가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했다. “이 작품으로만 사는 게 아닌데 이 이상을 넘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뭘 해도 복수라는 이름이 따라다녔어요. 복수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게 평생의 숙제였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 양동근은 지금 봐도 이 작품에서 연기를 정말 잘한다. 지금이야 자연스러운 생활연기가 익숙하지만 그때만 해도 양동근처럼 연기하는 이들이 없었다. 아빠 고중섭(신구)이 사망한 뒤 우는 장면, 뇌종양 판정을 받은 복수가 아빠가 싸준 쌈을 입에 넣고 입속 밥풀까지 튀겨가며 숨죽여 우는 장면은 지금 세대들에게도 명장면으로 꼽히며 소셜미디어에서 화제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캐릭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랐어요. 18년 만에 이 드라마로 인터뷰하면서 생각해봤죠. 이제는 뛰어넘을 생각을 내려놨어요. 이제는 알아요. 고복수라는 캐릭터뿐만 아니라 어느 작품도 <네 멋대로 해라>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그런 작품은 안 나온다는 것을요.”
___________
“시한부라도 살아줘”
<네 멋대로 해라>는 간접광고(피피엘·PPL)로 억지스러운 장면이 넘쳐나는 요즘 드라마와 달리 보기 편안하다. 극 중 모든 장소가 요즘처럼 가상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장소와 연결되는 공간이라 그냥 그들은 홍대 어딘가에서 18년간 쭉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심지어 극 중 미래의 동료들도 실제 치어리더들이었다. 그런 경과 복수를, 미래를 시즌2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네 멋대로 해라> 마지막 장면에서 복수는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마치고 나오는 복수를 보며 경이 환하게 웃으며 끝났다. 복수는 죽은 걸까? 죽지 않은 걸까? “죽었다고 해요. 이제 이런 연기는 절대 안 나올 것 같으니까.” 양동근의 우스갯소리를 잠재우며 박성수 피디가 말했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거예요. 둘이 연애도 하고 싸우고 헤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계속됐을 겁니다.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시한부라도 살아줘, 오늘을 열심히 살라는 것이니까요.” 우리 안에서도 살아 숨쉬고 있는 복수와 경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대들이여, 계속 네 멋대로 살아라. myviollet@hani.co.kr
▶ <한겨레> 문화부 기자. 언제든 옛날 콘텐츠를 다시 볼 수 있는 시대. 세대불문 되감기하면 좋을 대중문화 작품을 소개하려 한다. 연출, 연기, 이야기 기본 3박자에 충실하면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옛 작품들이 콘텐츠의 본질을 일깨운다. 지금 시선에서 새 해석이 등장할지도. 제작진과 배우들의 비하인드 코멘터리도 담아보겠다. 3주에 한번 연재.

Let's block ads! (Why?)




August 01, 2020 at 07:31AM
https://ift.tt/33e6cMZ

복수와 경은 어딘가에서 '네 멋대로' 살고 있을 것 같아 - 한겨레

https://ift.tt/3hnW8pl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복수와 경은 어딘가에서 '네 멋대로' 살고 있을 것 같아 - 한겨레"

Post a Comment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