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코 오이
- BBC 아시아 비즈니스 리포터
사람들은 출근길이나 회의 중간 시간이 날 때 어떤 앱을 사용할까? 대부분의 경우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틱톡 또는 게임 앱일 것이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10대가 메타버스 플랫폼에 접속해 아바타를 확인하고 있다.
메타버스 아바타는 이용자의 실제 모습을 반영할 수 있다. 원한다면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또는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처음부터 이용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목이다.
모니카 루이즈는 "아바타는 내가 그날 원하는 나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네이버Z의 글로벌 메타버스(3차원 가상공간) 플랫폼 제페토에서 '모니카 퀸'(Monica Quin)으로 활동한다.
그는 "현실에서는 머리를 잘랐다가 다시 기르기 어렵다"며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는 단 한 번의 클릭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메타버스는 정확히 어떤 개념일까? 메타버스는 온라인상의 다른 세계로, 약간의 가상현실과 증강현실로 이뤄졌다. 차세대 유망 기술로도 각광받아왔다. 3년 전 출시된 제페토는 아시아 최대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2억5000만 명가량의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제페토 이용자의 70%는 여성이고 일부는 10대다. 이는 남성 게이머 비중이 절대적인 로블록스 같은 메타버스 경쟁사와 비교하면 특이한 점이다.
이루디 제페토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이용자의 대부분은 아직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제페토가 그들이 이용하는 첫 소셜미디어"라고 말했다.
제페토 이용자의 90%가 한국 외 국가에 거주한다. 28살 모니카도, 19살 해나도 각각 캐나다와 미국에 살고 있다.
그들은 2018년 제페토에 처음 가입했다. 모니카는 아바타, 즉 자신의 전자 버전을 보는 것이 좋았다고 가입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해나는 앱스토어를 구경하다가 우연히 제페토를 발견하고는 호기심에 가입했다.
대체현실로의 도피
해나는 "나는 소셜미디어의 열렬한 팬이었던 적이 없다"며 "(소셜미디어에서) 큰 압박감을 느꼈고 즐거운 경험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제페토에서는 얼굴을 공개할 필요도 없고 의무도 없다"고 말했다.
모니카는 제페토 아바타 덕분에 억대 연봉을 벌고 있다.
모니카는 다른 아바타가 구매해 착용할 수 있는 드레스나 상의 등 디지털 아이템을 디자인하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다. 제페토 플랫폼에서 패션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 제페토 크리에이터들은 16억 개가 넘는 가상 패션 아이템을 판매했다.
가상 패션 아이템은 게임 화폐 '젬'으로 거래된다. 모니카가 만든 아이템은 1~5젬에 판매된다. 5000젬이 모이면 106달러(약 13만원)로 인출할 수 있다. 이용자들은 실제 돈으로 젬을 구매한다.
이 CSO는 "매일 수만 명의 사람이 새로운 아이템을 디자인하고 출시한다"며 "제페토는 세계 최대 가상 패션 시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지역 패션 브랜드뿐만 아니라 구찌나 디올, 랄프 로렌 등 유명 명품 패션 브랜드도 제페토에 가상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모니카는 "현실에서는 너무 비싸서 살 수 없는 옷들도 디지털 세상에서는 모두 구매할 수 있다"며 "내가 이 플랫폼에 깊게 빠져든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모니카와 같은 차세대 디자이너를 끌어들이기 위해 제페토는 이탈리아 패션스쿨 마랑고니(Instituto Marangoni Miami)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달에는 지원자들에게 제페토를 위한 컬렉션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가상 아닌 '현실 커리어'
패션 이상의 일도 할 수 있다. 제페토 메타버스에서는 연예인이 될 수도 있고 건축가가 될 수도 있다.
이곳에서 해나는 제페토에 공간을 만드는 지도 제작자다. 그는 아바타들이 탐험할 수 있는 가상 환경을 만든다.
해나는 "(제페토는) 일종의 대체현실 같다"며 "나는 대체로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만들고 실제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타지스러운 것들을 만드는 사람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이 CSO는 "메타버스 공간에서 버스킹을 하는 아바타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음반사와 협력해 가상 가수를 양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대학교와 고등학교, 온라인 교육 기관과 협력해 더 많은 사람이 메타버스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각자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실제 커리어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휴먼은 이미 한국의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홈쇼핑 플랫폼에서 실제 연예인처럼 활약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 인플루언서 로지는 100건이 넘는 후원을 받았다. 대기업 롯데홈쇼핑의 가상모델 루시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6만 명이 넘는다.
죽음 이후의 삶?
미래에는 고인이 된 사람들도 메타버스에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세규 비브스튜디오 대표는 "기술이 진보하면서 엄마, 아빠, 가족 등 고인이 된 사람들도 가상 세계에서 복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비브는 딸을 떠나보낸 한 엄마를 돕기 위해 딸을 닮은 아바타를 제작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3~5년 뒤에는 3D로 구현하고 AI로 생기를 불어넣은 완벽한 가상인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8시간 분량의 녹음본만 있으면 목소리도 따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메타(전 페이스북)부터 마이크로소프트까지 많은 기업들이 메타버스에 투자하면서 여러 개의 단절된 메타버스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김 대표는 "인터넷 발전 초기와 비슷한 상황"이라며 "당시 많은 기업이 있었지만 몇몇 기업만이 경쟁에서 이겼고 산업을 지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메타버스도 이와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민간 기업들이 메타버스 경쟁에 뛰어든 가운데, 한국의 서울시는 자체 메타버스 개발에 350만달러(약 42억원)를 투자해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 첫 주요 글로벌 도시가 됐다.
이창근 서울시 대변인은 BBC에 "시민들이 시청까지 오지 않아도 AI 공무원이 메타버스에서 이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실생활 문제들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코로나19를 걱정하지 않고도 축제를 열 수 있다"며 "사람들은 우주를 탐험하거나 조선시대로 과거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사람에게 이러한 가상 생활은 다소 먼 이야기로 느껴진다. 메타버스는 최근에야 화제가 됐으며, 다른 모든 신기술과 마찬가지로 위험성과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통제와 규제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윤리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바타가 메타버스에서 가상 자산을 훔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 CSO는 "정말 중요한 것은 규제 당국이 메타버스를 더 많이 사용해보고 실제 장단점을 이해하는 것"이라며 "우리처럼 플랫폼을 관리하는 운영 주체와 이용자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로서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메타버스 이용자를 늘리고 이곳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을 만들기 위한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다. 비록 메타버스가 아직까지는 파편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과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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