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텃밭에서 찾은 보약 ⑤ > 뉴스 - 한의신문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제철에 맞는 음식을 한의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텃밭에서 찾은 보약’을 소개합니다.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권해진 원장은 8년째 텃밭을 가꾸고 있으며 ‘파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맡아 활발한 지역사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권해진.jpg

권해진 래소한의원장,  <우리동네한의사>저자 

C2329-34.jpg

“배 수확해 가라고 전화가 왔어. 이번 주말에 애들 데리고 가자.” 

어머니가 이번 주에 꼭 가야 한다며 시간 내라고 하십니다. 물론 텃밭에 키우는 배나무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배나무만 키우는 농장에서 매해 봄에 나무를 분양하면 저희는 3월에 미리 돈을 내고 나무 한 그루를 분양받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가을에 수확하는 것뿐입니다. 약을 치거나 가지를 다듬는 등 다른 일은 농장주가 하는 거지요. 아이들은 나무에서 직접 배를 따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못생긴 작은 배부터 너무나 탐스러운 큰 배, 약간 상처가 있는 배까지 여러 종류를 수확해 옵니다. 농장 측에서도 배를 따는 노동력을 줄이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작은 배들을 버리지 않게 되어 나쁠 게 없지요. 배 분양은 풍년이든 흉년이든 일정한 금액으로 미리 상품을 사고파는 것이라 농가에는 안정적인 수입원이 됩니다.

◇감기 예방에 좋은 수세미오이, ‘사과락’의 의미는?

“올해는 태풍이 안 지나가서 배가 상처도 없고 양은 많네. 한의원 약탕기에 한 번 달일 시간 있겠어? 내가 수세미랑 배랑 손질해서 줄게. 내일 가서 달여와.” 

어머니가 요청하시는 것은 ‘배길경 수세미탕’입니다. 실제로 그런 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 가족이 겨울 동안 먹을 ‘감기 예방탕’을 말하는 것입니다. 

“할머니, 수세미를 넣어요? 그 세제 묻혀서 그릇 씻을 때 쓰는 수세미?” 

딸아이의 질문에 모두 잠깐 웃었습니다. 실제로 예전에는 그릇 닦을 때 수세미를 써서 ‘수세미 오이’라 불렀으니 아이의 생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수세미오이라고 하는, 열매가 오이처럼 주렁주렁 달리는 식물이 있어. 방울토마토 덩굴 옆에 자라는 그 식물 말이야. 그걸 우리 집에서는 수세미로 쓰니까 그걸 약에 넣는다는 것도 맞는 말이기는 해. 하지만 다른 헝겊 수세미나 철 수세미를 말하는 건 아니야. 이건 한약재로도 쓰이는데, 이름은 ‘사과락(絲瓜絡)’이야.” 

“사과락이 무슨 뜻이야? 우리가 먹는 사과는 아닐 거 아니야.” 

딸이 이번에는 실수를 하지 않고 알아내려고 물었습니다. 

“‘사’는 실이란 뜻의 한자로 실처럼 생겼다는 것이고, ‘과’는 ‘오이 과’ 자(字)인데 호박(중국어로는 남과(南瓜))이나 수박(중국어로는 서과(西瓜))처럼 열매가 박 모양으로 열리는 과일에 많이 붙는 한자야. ‘락’은 이어져 있다 이런 뜻이거든. 한마디로 실로 된 박 덩어리라는 뜻이지.”

수세미1.jpg

 

◇용도에 따라 수확시기 달라

텃밭에서는 지지대를 타고 올라가면서 자라는 덩굴성 식물을 한곳에서 키웁니다. 그래서 방울토마토, 오이, 여주, 수세미오이가 비슷한 장소에서 자랍니다. 수세미오이는 초여름에 심어서 울타리나 지주대에 잘 올라가도록 가끔 끈으로 살짝 묶어주어야 합니다. 벌레를 타지 않아서 키우기가 쉽습니다. 

10월이 되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수확 시기는 약으로 쓸 때와 설거지용 수세미로 쓸 때에 따라 다릅니다. 약재로 쓸 때는 초록이 선명할 때 가로로 잘라 껍질도 함께 말려서 씁니다. 수세미로 쓸 때는 열매가 잘 익어서 초록빛에서 갈색으로 변해갈 때 따서 삶아야 합니다. 삶아서 건지면 겉껍질이 쉽게 벗겨져 흰 속살이 드러납니다. 그 속을 잘 말려서 두 등분이나 세 등분해서 주방에서 사용하지요. 요즘은 물속 미세플라스틱이 환경문제가 되고 있어서 주방에서 쓰는 수세미를 마섬유로 만들거나 식물 수세미로 사용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먹기 편한 감기 예방탕, ‘배길경 도라지탕’

사과락은 열을 줄이고 가래를 풀어주는 성질이 있습니다. 지난 달 연재한 ‘길경’은 폐와 기관지 급성 염증, 편도선염에 쓰이고 가래를 삭여서 배출하는 효능이 있다고 했지요. 사과락도 비슷한 효능이 있습니다. 쓴 도라지에 비해 맛이 담담한 편이라 아이들도 먹기가 편합니다. 

‘배길경수세미탕’을 만들 때 구성 비율은 배 10kg에 생도라지 2kg, 수세미오이 1kg, 생강 1kg입니다. 씁쓸한 맛을 즐기는 분들께 추천 드립니다. 보통 생도라지를 말리면 무게가 1/7로 줄어드는데, 만약 말린 도라지가 있다면 300g 정도 넣으시면 됩니다. 수세미도 그렇게 계산하면 편하지만 수세미오이의 경우 수분이 워낙 많아서 말리면 1/10이 되기도 합니다. 

올해는 지인의 밭에 수세미오이를 많이 심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활동하는 NGO 환경단체 회원들에게 연말 선물로 수세미를 주기로 했습니다. 큰 솥을 걸어 놓고 삶고 껍질을 까고 가을볕에 말려두었습니다. 감기 예방 ‘배길경수세미탕’을 만들고 부엌에서 쓸 수세미도 장만하는 일석이조의 유용한 작물이 바로 ‘사과락’입니다.

Adblock test (Why?)

기사 및 더 읽기 ( 텃밭에서 찾은 보약 ⑤ > 뉴스 - 한의신문 )
https://ift.tt/3jqli9M


Bagikan Berita Ini

Related Posts :

0 Response to "텃밭에서 찾은 보약 ⑤ > 뉴스 - 한의신문"

Post a Comment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