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실 토크
사진을 일컬어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부릅니다. 필름 카메라 시절, 현상과 인화를 위한 필수 공간이던 암실은 사진기자들의 일상과 더불어 다양한 취재 후기가 오가던 사랑방이었지요. 장비를 챙기며 나누던 대화에서 기획의 실마리를 찾기도 하고, 현장에서 겪은 아찔함을 복기하며 다음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기기가 디지털로 바뀐 지금, 편집국에 공식적인 암실은 사라진 지 오래이나 그 이야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사진기자들의 수다를 ‘암실 토크’ 연재로 전합니다.
이번 취재를 마치며 마음에 남는 사진 한 장을 묻자 백소아 기자는 다음의 설명과 함께 이 사진을 보내왔다. “취재 내내 카메라 렌즈를 막악던 `라이언피시' 점쏠베감팽! 다음에 좋은 취재 있으면 연락할게. 렌즈는 가리지 말아다오~!”
지난 8일 이상고온으로 사라져가는 제주 바다숲을 취재한 ‘제주 바다에 무슨 일이’ 기사가 한겨레 사진 기획 ‘이 순간’으로 보도됐다.(
관련기사▶ [이 순간] 제주 바다숲 사라져가고…“아열대 물고기가 절반”) 전면광고처럼 대판 신문 한 면을 가득 채운 푸른 바다가 반가웠으나 이내 아래로 이어지는 시선 끝에 펼쳐진 황폐한 풍경에 먹먹해졌다. 암실 토크 첫 손님은 제주 바닷속을 누비고 온 백소아 기자이다. -코로나19로 각광받고 있는 제주, 그 바닷속을 살펴본 이번 기획의 시작점은? “박종식 사진기획팀장이 제안한 아이템이었어요. 제주바다가 수온 상승으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하는데 한번 다뤄보는 게 어떨까?” 딱 맞춰서 다이빙이 취미인 백 기자의 제주 휴가 일정이 잡혀있었단다. 환상의 타이밍. 어느 정도 사진으로 표현될지 가늠이 안 되는 상황에서 무작정 들이대기는 부담스럽다. 휴가 중 테스트 촬영을 거쳐 정식 취재가 결정됐다.
백소아 기자가 지난 2일 제주도 서귀포 문섬 인근에서 연사호 사진 취재를 하고 있다. 독자 제공
“처음에는 화려한 연산호로 취재대상을 정했는데 좀 더 공부해 보니 최근 돌산호로 인해 바닷속 황폐화가 빨라지고 있다고 해서 중간에 취대 대상을 바꾸게 됐어요. 그리고 바닷속에 들어가 실제로 그 모습을 모니 저도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이어 백 기자가 두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전복의 먹이이기도 한 감태숲과 돌밭이 펼쳐진 듯한 돌산호의 풍경. 가을이라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바닷속을 헤엄쳐가는데 어느 순간 감태숲의 익숙한 정경이 뚝 끊기고 끝도 없이 돌산호가 이어졌단다.
왼쪽 사진이 감태, 오른쪽 사진이 돌산호 풍경이다.
-그런데 사진부에 수중 카메라는 없잖아요? 어떤 카메라로 취재했어요? “액션캠 등 세 가지 썼어요. 모두 다이빙 숍에서 대여해서.” 수중 취재는 처음이었는데 다이빙숍 강사님이 많이 도와주셨단다. 할 말이 많은 듯 보여 특별히 고마운 분들을 물었더니. △다이빙숍의 김원국 강사, 양염염 강사 △박자섭 선장 △보목포항쪽 다이빙 숍에 이름모를 다이버 △고준철 제주수산연구소 연구원까지 준비된 듯한 답변이 쏟아졌다. 문화일보의 김호웅 기자도 타사 후배인 백 기자에게 수중촬영 방법 등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단다. 그리고 그 끝에 나온 아찔한 한 마디.
“사실은 제가 첫 테스트 취재 때 250만원짜리 수중 조명을 잃어버렸거든요….” 땅 위에서 하는 일반적인 사진 취재와 많이 달랐고 첫 수중 취재라 경황도 없었다. 입수할 땐 분명히 왼손에 조명, 오른손에 카메라가 있었는데 취재를 마치고 배에 올라오니 없었단다. 조명도 기억도…. 함께 머릿속이 하얘지던 찰나, 백 기자가 기적 같은 반전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오후에 그걸 찾았어요! 그 근처에서 다이빙하시던 이름 모를 다이버분께서 그걸 찾아서 선장님한테 전달해주신 거예요.” 배를 태워준 선장님이 “문섬 근처에서 조명을 잃어버렸다. 본 사람 있으면 연락달라”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렸는데 마침 잠수 중 조명을 발견한 다이버가 그 소식을 듣고 가져다주었단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기사를 완성할 수 없다는 걸 기획취재하면서 더욱 절감하고 있어요.” 궁서체의 진심을 담아 백 기자가 말했다. 하물며 기사 한 편도 온 우주의 도움으로 완성되는데 어찌 자연과 인간이 따로일 수 있을까. 대화를 마무리할 즈음 원 기사의 마지막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그렇다. 제주 바다의 변화는 바닷속 생명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우리가 마주하게 될 위기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도전을 해서 개인적으로는 더 의미가 있었고. 자연 앞에 한없이 작은 인간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우리에게 소중한 제주 바다를 더 귀하게 여겨주셨으면 좋겠어요.”라는 마지막 소감과 함께 보내온 백소아 기자의 방역지침준수 취재 인증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관련기사▶ [이 순간] 제주 바다숲 사라져가고…“아열대 물고기가 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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