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발사체 누리호가 내달 21일 발사에 성공하면 한국은 미국, 러시아, 유럽, 중국, 인도, 일본에 이어 세계 7번째로 우주발사체 기술을 보유하게 된다. 10여년간 정부 예산과 출연연구기관 중심으로 개발된 누리호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의 우주개발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우주 선진국의 기술을 추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전세계는 이미 우주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고 있다. 우주개발이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넘어가는 ‘뉴스페이스’ 시대에 맞춰 주요 국가는 우주산업을 육성하는 차원을 넘어 우주에서 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우주경제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이 2024년 달에 인간을 다시 보내는 ‘아르테미스 계획’을 발표하고 동맹을 모으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도 2024년 달 탐사를 목표로 손을 잡는 등 국제 질서도 재편되고 있다.
한국도 이제는 기술 개발 중심으로만 수립되던 우주개발 정책의 기조를 국가안보와 외교, 경제 등을 고려한 종합적인 정책으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 우주개발정책을 주도하는 싱크탱크 역할로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내에 지난 7월 출범한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는 최근 첫 정책포럼을 열고 이같은 한국의 새로운 우주개발 방향을 제안했다.

마지막 남은 경제 영역으로 꼽히던 우주는 최근 관련 기술들이 발달하며 시장을 형성하는 모양새다. 컨설팅기업 브라이스스페이스앤드테크놀로지에 따르면 우주 분야 벤처기업에 투입된 자금 중 85%가 최근 4년 내 투자됐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3500억 달러(414조원) 수준이던 우주시장이 2040년까지 1조 1000억 달러(1302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조 7000억 달러(3192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안형준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연구정책2팀장은 “우주는 1950년대 이후 정복과 탐험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위성을 통해 영상을 만들고 광고활동이나 관광에도 활용되며 제조나 경제활동의 목표가 되는 상업적 공간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은 우주개발을 통해 국가발전을 연결짓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한국의 우주개발 정책은 선진국 도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한국의 첫 우주정책을 담은 것으로 꼽히는 1986년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부설 천문우주과학연구소의 ‘한국형 우주과학기술 개발에 대한 연구’ 보고서에는 우주개발 비전으로 2000년대 선진국 도약을 꼽았다. 국가 우주개발정책을 담은 우주개발진흥법이 만들어진 2005년 당시에는 한국형 발사체와 한국 최초 우주인배출사업 등 기술축적을 위한 사업들이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올해가 한국 우주정책의 새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는다. 올해 한미 미사일 지침 전면 해제, 아르테미스 협정 참여, 한국형위성항법시스템(KPS) 구축, 누리호 발사 등 굵직한 우주 이벤트가 일어나면서다. 안 팀장은 “최근 전 세계 우주경제가 도약하며 우주공간을 국가 주요 인프라로 보는 시도가 늘고 있다”며 “한국도 우주를 국가간 경쟁을 통해 확보할 자산임을 인식하고 기술개발 중심 정책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기술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로 도약할 정책을 마련해야 우주 선진국들의 경쟁에 합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임종빈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연구정책1팀장은 “지금까지는 기술적 추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달성했다면 이제는 한 단계 뛰어올라야 선진국과 어깨를 겨룰 수 있다”며 안보와 외교, 경제 등을 우주정책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과 제도도 연구개발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상업화와 안보, 선제적으로 나설 혁신 제도를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을 넘어 경제와 안보 개념이 포함되면서 유인우주활동, 우주교통관제, 우주안보와 같은 새로운 우주개발 분야가 생겨나고 있다. 임 팀장은 최근 스페이스X가 전 세계 어디든 30분 내로 도달하기 위해 우주항을 짓고 있는 사례를 예로 들었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월 해양 로켓 발사대를 내년 준공하고 발사체를 지상 이동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발사체를 활용하면 비행기로 14시간 걸리는 뉴욕과 베이징 이동시간을 30분대로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주산업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꼽힌다. 전 세계 프리미엄 여객 시장의 10%를 발사체가 점유하면 지난해 3조 원 규모였던 세계 발사체 시장이 현재의 5배로 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임 팀장은 “이렇게 되면 항공교통관제와 마찬가지로 우주에서도 우주 관제에 필요한 시스템과 제도, 운항체계 등이 자리잡아야 한다”며 “이러한 이슈를 고려하며 한국도 정책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우주 분야 투자는 다른 국가들과 비슷한 규모지만 확대될 여지가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주분야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0.039%로 OECD 국가 중 12위다. 2018년 한국의 GDP 순위인 10위와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정부 R&D 대비 우주 R&D 비중은 3.02%로 OECD 평균 8%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국가 R&D 투자규모가 세계 4위임을 감안해야 하나 우주 분야 투자가 여전히 적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안 팀장은 “우주 분야에서 새로운 비전이 생긴다면 확대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황희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장은 “우주개발은 이제 민간자금이 주도하며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우주정착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영역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이러한 환경 속에서 우주산업 혁신과 우주안보, 외교, 뉴스페이스 시대에서 도약할 수 있는 전략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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