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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반지하 전세 1억원!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매일노동뉴스

▲ 전진희 서울청년진보당 부대표

언젠가 친구들과 자신이 처음 깨달았던 ‘가난의 기억’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한 친구는 10살 때쯤 엄마랑 함께 들어간 옷가게에서 가격표를 보고 엄마가 사 줄 수 없을 거 같아 말하지 못했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 어머니가 어디 사냐고 물어 봐서 답하고 나니 묘한 찡그러짐이 느껴졌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쯤 그 동네가 육교 하나를 두고 부촌과 빈촌이 갈라지는 동네였단 걸 알게 됐다고. 여러 대화가 오가던 중 다른 친구가 ‘가난의 냄새’에 대해 말했다. 부모님이 술과 담배를 하셨는데 갖가지 음식물 냄새와 함께 교복에 그 냄새가 배어 나서 너무 부끄러웠다는 것이었다. ‘가난의 냄새’가 오래도록 인상 깊었다. 다른 가난의 기억은 소유하지 못한 것이긴 해도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면 감출 수 있다. 하지만 냄새는 계속 묻어있는 거라 그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감추기도 지우기도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에게도 ‘가난의 냄새’가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 나오던 쾌쾌한 반지하의 냄새. 섬유유연제를 가득 넣고 빨래를 돌려도 햇볕이 제대로 들지 않는 반지하에서 마른 빨래에는 쾌쾌함이 묻어 있었다. 그래서 몇 번은 옥상이나 마당에 빨래를 넌 적이 있다. 그런데 옆집 아저씨랑 눈이 마주친 이후론 여자들이 사는 집이라는 게 들킬까 그것마저 포기했다. 부모의 지원 없이 서울에서 지상으로 독립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와 친구는 어렵게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5만원의 반지하방을 마련해 4~5년간 살았다. 그 기간 2번이나 반지하에서 반지하로 이사를 했다. 반지하도 다 똑같은 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이사 간 반지하는 화장실이 지상이었고, 창문이 담벼락으로 막혀 있어 보다 안전하게 느껴지는 집이었다.

원래 반지하는 1970년대 정부가 전쟁 발발 가능성을 대비, 방공호로 활용하기 위해 주택마다 지하실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됐다. 원래 이 지하 공간을 임대하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1980년대 주택 부족 사태가 극심해지면서 반지하 임대 요건이 완화됐다. 이때부터 반지하는 형편이 넉넉지 못한 이들의 생활터전이 됐다. 영화 <기생충>에서 그려지는 반지하살이는 극빈층의 삶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청년가구의 주거빈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2019)’에 따르면, 만 19~34세 가구주 중 8.9%가 최저주거기준 미달 상태에 놓여 있다. 청년에게 반지하나 옥탑방살이가 특별한 일은 아니게 됐다.

최근 서울 '반지하방 전세'가 1억원을 돌파했다.

집값과 전·월세 가격 급등 영향으로 주거 취약시설인 빌라 지하층의 전세금도 오른 것이다. 서초구(1억7천434만원), 종로구(1억6천31만원), 용산구(1억4천387만원), 영등포구(1억3천214만원) 등은 1억원을 훌쩍 넘었다. 모든 대선 주자들이 ‘부동산 정책’을 말한다. 유력 대선주자라고 불리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이낙연 후보나 국민의 힘 윤석열·홍준표 후보나 부동산 규제와 세금에 대한 입장에선 달라도 공통적으로 부동산 공급 확대를 말한다. 그러나 서울 주택보급률은 96%, 수도권은 98%가 된 지 오래다. 집이 더 많이 공급돼도 다주택자가 더 많은 주택을 소유하는 것이 반복된다면 집값은 잡을 수 없다. 결국 국가가 어디까지 토지 소유를 제한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선 집값을 잡겠다는 것은 거짓부렁이다.

집이 없는 것도 아닌데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아 집도 아니었던 반지하가 1억원을 웃돈다.

월급 200여만원을 차곡차곡 모아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날이 가능할까. 내가 4~5년만에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었던 건 SH 청년공동주택에 당첨된 행운이 따랐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나이 제한이 있어 6년 후엔 살 수 없다. 나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수많은 청춘들이 현실의 단단한 벽을 마주하고 있다. 이제 대선주자들은 철 지난 처방전과 숫자놀음을 멈춰야 한다. 당첨운을 기대하라는 게 아니라 어떻게 토지를 모두의 것으로 돌려놓을 것인지, 투기를 어떻게 제한할 것인지 답해야 한다.

서울청년진보당 부대표 (say_jin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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