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프랑스 유네스코 본부에서
‘한국: 입체적 상상’전 개막
BTS 공연 실감콘텐츠도 공개
<기생충> 실감콘텐츠를 체험하는 모습.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머리에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를 쓰니 우주 공간 같은 가상현실(VR) 세계가 펼쳐졌다. 별들이 눈앞으로 쏟아져 온통 하얗게 변하더니 곧이어 어느 집 거실이다. 이 집, 익숙하다. 영화 <기생충> 속 박 사장(이선균)의 저택이다. 앞뒤 양옆을 둘러보니 내가 실제 거실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았다. 유리창 너머 정원에는 인디언 텐트가 보였다.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천장이 열리고 집이 해체되면서 내 몸이 텐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느새 공간이 바뀌어 도로변 계단 길을 내려가는 기택(송강호)네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 속 한 장면이다. 이어진 곳은 기택네 반지하방. 이미 물이 가득 들어차 있고, 내가 그 안에 잠겨 있는 듯했다. 위에서 커다란 돌덩이가 내려왔다. 기우(최우식)가 애지중지하던 산수경석이다. 돌 표면이 눈앞으로 다가오니 내가 마치 거대한 절벽에 매달린 것만 같았다.
<기생충> 실감콘텐츠 장면.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캄캄한 암흑 속에서 문이 열렸다. 지하실로 내려가는 길이다. 좁고 긴 계단 통로는 으스스했다. 밑바닥에 도달하니 영화 속 근세(박명훈)가 숨어 살던 바로 그 공간이다. 갑자기 쿵쿵 소리가 나며 공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리를 따라가보니 시커먼 형체의 사람이 머리로 스위치를 쿵쿵 박고 있었다. 내 몸이 점차 가까이 다가가서 그의 몸과 합치되는 듯했다. 오싹했다. 다시 공간 이동. 눈 내리는 밤, 박 사장네 저택이 내려다보였다. 안에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전구가 켜졌다 꺼졌다 하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내 몸이 전구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다시 처음의 우주 공간이 나왔다. 그러곤 다시 반복이었다. 헤드셋을 벗었다. 영화 한편을 고스란히 체험한 기분이었다. 시계를 보니 고작 4분30초가 지나 있었다. 지난달 24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 콘텐츠문화광장 스튜디오에서 <기생충> 실감콘텐츠를 체험했다. 이는 방탄소년단(BTS) 콘서트 실감콘텐츠 등과 함께 6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막한 ‘한국: 입체적 상상’ 전시회에서 공개됐다.
<기생충> 실감콘텐츠를 체험하는 모습.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이번 전시는 유엔이 지정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제 창의경제의 해’를 맞아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미래에 대한 한국의 상상력을 세계인들과 공유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유네스코 사무국 문화다양성 협약 부서의 공동 주최로 16일까지 열린다. 전시 주관을 맡은 콘진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콘텐츠로 <기생충>과 방탄소년단을 선정하고, 이를 실감콘텐츠로 제작하도록 지원했다. 빅히트뮤직은 방탄소년단이 ‘디엔에이’와 ‘쩔어’를 공연하는 무대를 실감콘텐츠로 만들었고, <기생충>은 실감콘텐츠 전문 기업 이브이알스튜디오가 맡아 작업했다. 이브이알스튜디오의 구범석 감독은 <한겨레>와 만난 자리에서 “원작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기생충>을 수없이 돌려 보며, 책이 몇 권인지, 계단과 창살 수까지 디테일하게 맞췄다”며 “하지만 부암동 계단 장면이나 산수경석이 내려오는 장면은 초현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체험 강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스케일을 더 키웠다”고 설명했다.
<기생충> 실감콘텐츠를 연출한 구범석 감독.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구 감독은 영화에 나온 모스 부호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마지막에 머리로 쿵쿵 하며 전구로 보낸 신호는 ‘아들아’라는 뜻이고, 첫 장면에서 우주의 별빛이 점과 선으로 신호를 보낸 건 ‘그날 일은’이란 뜻이라 했다. 마지막과 첫 장면이 순환 구조를 이루며 ‘아들아, 그날 일은…’이라는 영화 속 메시지를 모스 부호로 구현했다는 것이다. 구 감독은 “이번 작업은 창작자로서 독이 든 성배와도 같았다. 원작이 워낙 대단한 작품이라 무섭기까지 했지만,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더욱 몰두해 작업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완성된 작품을 본 봉준호 감독이 “영화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새로운 체험이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프랑스 현지에서의 관심도 높다. 무료 전시여도 사전 예약자만 볼 수 있는데, 표가 30분 만에 마감됐다고 한다. 콘진원 한류사업팀의 서희선 부장은 “뜨거운 관심에 시간당 관람 인원을 30명에서 40명으로 늘렸다”며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봉 감독의 팬이어서 특별히 기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16일부터 누리집(
cubicallyimagined.kr)으로도 볼 수 있으며, 헤드셋을 이용한 오프라인 체험은 추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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