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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정부는 집값 폭락을 기다리나 - 국민일보


아무래도 정부는 집값이 폭락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경제부총리와 국토교통부 장관에다 한국은행 총재까지 스크럼을 짠 듯 이구동성 집값 하락을 경고하고 나선 걸 보면 말이다. 집값 하락의 징조가 어디 있다는 걸까.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규제지역이든 비규제지역이든, 아파트며 빌라며 오피스텔이며 할 것 없이 집값은 구름 속 산비탈을 오르고 있다.

이들이 하는 얘기를 보면 신통한 지표를 참고하는 건 아닌 듯하다. 그저 ‘집값이 많이 올랐으니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식이다. 앞으로 금리가 오르면 대출 규모가 큰 부동산이 흔들릴 수 있다는 설명을 붙이지만 나라 살림 책임자들이 일제히 집값 거품론에 힘을 주기에는 영 부실한 논리다. 몇 배 오른 주가에 대고 “많이 올랐으니 빠질 수 있다”고 말하는 수준 아닌가.

집값 안정 전략이 겁주기라니. 일련의 빈약한 구두개입을 보면서 정부의 무기력한 처지를 재확인한다. 손발이 묶이면 으름장을 놓는 것 말고는 별도리가 없다. 뒤늦은 규제 철회로 민심에 불을 지른 마당에 또 무슨 규제 대책을 내놓을 면목이 없을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위태로운 정권 형편에 더 퍼주진 못할망정 유권자를 때려잡겠다고 나서기도 무서울 것이다.

그런데 정말 말 몇 마디로 집값을 끌어내릴 수 있다고 믿는 걸까. 실수요자들이 겁먹고 ‘내 집 마련’을 미뤄서 집을 사려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줄고, 그 결과로 집값이 덜 오르기를 바라는 심산. 얼마 전의 집값만큼 오른 전셋값에 놀라 ‘지금이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무주택자들 앞을 정부가 가로막고 서서는 “이제 집값 급락할 테니 사지 말라”고 강변하는 식이라니.

이런 일이 2006년에도 있었다. 고강도 규제에도 집값 상승세가 가팔랐던 그해 5월 추병직 건설교통부(현 국토부) 장관은 집값이 2~3년 안에 크게 떨어질 거라고 했다. 추 장관에 이어 한덕수 재정경제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재경부 수뇌부가 하루 이틀 간격으로 “집값 빠진다”를 외쳤다. 한 부총리는 “강남 집값이 과거 버블 붕괴 직전의 일본 수준”이라고 했다.

최근 어디서 들은 소리와 비슷하다. “지금 무리하게 주택을 구입하면 2~3년 뒤 매도할 때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노형욱 국토부 장관, 지난 11일)2년여 뒤인 2008년 가을 정말 집값이 빠지긴 했지만 추 전 장관 등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했을 리는 없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일본 같은 버블 붕괴도 없었다. 집값 하락은 2008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6개월에 그쳤고 이후 반등, 조정, 정체, 그리고 급등에 급등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폭락론만큼 속 편한 주장도 없다. 공포를 조장하기는 쉬우면서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된다. 가격이 급락하면 “거 봐라”고, 안 빠지면 “다행 아니냐”다. 양쪽 길이 모두 열린 전략이다. 손해 볼 것 없는 이 방법을 자기 이름값 높이는 데 써먹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은데 정부가 이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해 11월 추 장관은 물러났고, 이듬해 1월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해 거듭 사과했다. 장관이 옷을 벗고 대통령이 머리를 숙인다고 집값이 내려왔던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이 때문에 이사를 고민하는 후배에게 근황을 물었다. 그는 지난달 이 지역 저 지역을 뒤지며 높은 집값에 망설이고 있었다. “일단 지금 사는 곳에 있어 보려고요. 내년에 대통령이 어찌 되나 봐서.” 그에게 ‘누가 대통령이 됐으면 하느냐’ 따위는 묻지 않았다.

강창욱 국제부 차장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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