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정당’ 이미지 쇄신 기대 반영
‘안티페미 노이즈 마케팅’으로 주목
국민의힘 당권에 도전하는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24일 오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당 대표로 출마한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이 여론조사 1위를 내달리며 당권 레이스 초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야당의 변화·쇄신 욕구가 꾸준히 인지도를 키워온 ‘정치인 이준석’에게 투영됐다는 분석과 함께 중진 주자들의 견제도 거세지는 양상이다. 당원 투표와 일반 여론조사를 각각 50%씩 반영하는 예비경선 통과는 유력하지만, 본선에 올라가서는 70%에 달하는 당심을 잡아야 한다. 그가 6·11 전당대회에서 승리하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유력 정당의 ‘국회의원 경험 없는 30대 대표’가 탄생하지만, 지금의 기세가 본선으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 전 최고위원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22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의힘 당 대표 여론조사(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30.1%로 1위를 기록했다. 나 전 의원이 17.4%로 2위, 주호영 전 원내대표가 9.3%로 3위였다. 2·3위 지지율의 합보다 이 전 최고위원의 수치가 더 높은 압도적인 결과였다. 초선 당대표 후보인 김웅·김은혜 의원은 각각 5%, 4.9%였다. 조사 결과를 뜯어보면, 이 전 최고위원은 남성(35.7%), 30대(36.2%)와 40대(31.9%), 중도 성향(36%)의 탄탄한 지지율을 기반으로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여성(24.5%)과 20대(25.1%), 호남권(22.5%)과 대구경북(22.9%)에서도 1위였다. 특히 열흘 전 조사에서 7.9%에 불과했던 여성 지지율은 3배(24.5%)로 치솟았다. 8.7%에 불과했던 60대 이상에서도 29.2%까지 올랐다. 여성할당제 폐지 등 2030 남성을 주로 대변하며 진중권 동양대 교수와 ‘페미니즘 설전”을 벌여온 점을 고려하면 여성 지지율 상승은 의외라는 평가가 나온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24일 <한겨레>에 “2030세대는 쇄신의 상징적 인물로 정치적 경험이 10년 넘는 이 전 최고위원을 꼽는 것으로 보인다. 50대와 60대 이상에서 지지가 늘어나는 것은 ‘당선될 사람’에게 전략적으로 투표하는 경향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머니투데이> ‘더300’과 미래한국연구소의 의뢰를 받아 피엔아르(PNR)가 지난 22일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도 이 전 최고위원은 26.8%로 1위였고, 나 전 의원 19.9%, 주 전 원내대표 9.5% 차례였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실망, 그리고 쇄신·변화를 바라는 야권 지지자들의 바람이 이 전 최고위원을 향한 기대로 표출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받고 있다. 이준석이 ‘꼰대 정당’의 이미지를 변화시킬 상징적 인물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초선 의원은 <한겨레>에 “민심은 세대교체와 새로운 인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당에서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1985년생인 이 전 최고위원은 올해 36살이다. 공천에서 가점을 주는 청년 기준이 45살인 정치권에서 이 전 최고위원은 매우 ‘어린 나이’다. 그런 그가 ‘개혁 보수’의 상징으로 떠오른 데는 △각종 방송 출연을 통해 얻은 대중적 인지도 △극우 유튜버 등을 배격하는 합리적 보수 표방 △높은 남성 지지도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6살이던 2011년 그는 새누리당 최연소 비상대책위원으로 발탁된 ‘박근혜 키즈’였지만 당 지도부를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2017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직후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바른미래당-새로운보수당을 거쳤다. 국민의힘 ‘유승민계’로 상징되는 개혁보수 세력의 일원으로 10년 동안 꾸준히 그 길을 걸어온 셈이다. 하지만 최근엔 20대 남성 표심 몰이에 집중하면서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노이즈 마케팅’을 활용해 인지도를 높였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 전 최고위원은 4·7 재보선 이후 ‘여성할당제 폐지’를 내세우며 남녀 편가르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안티페미니즘 이슈로 노출 빈도를 높이며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린 것이 전당대회와 맞물려 돌풍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최근 그의 지지율을 보면 젊은 층은 큰 변화가 없고, 여성들은 젠더 이슈 등을 두고 행보를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짚었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도 “본인 입지를 굳히기 위해 일부러 남녀갈등을 부추겼지만, 당에는 해를 끼치고 본인만 스타가 됐다”고 평가했다.
여론조사에서 밀린 나경원 전 의원은 이 전 최고위원 견제에 나섰다. 그는 이날 <기독교방송>(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당권 경쟁이) 몇몇 정치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거나 아직도 고질적인 계파 그림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이 전 최고위원이 ‘유승민계’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했던 ‘친박’ 김태흠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컴퓨터와 씨름하던 나를 사람들과 씨름하는 곳으로 끌어내 준 그분에게 항상 감사하다”고 한 이 전 최고위원을 향해 “비난하고 탈당하는 것이 이준석식 감사의 표현인가.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더니 언행은 노회한 기성정치인 뺨친다”고 비판했다. 친박 등 당내 강성보수 세력의 거부감이 드러난 셈이다. ‘중량감 부족’은 여전히 약점으로 꼽힌다. 내년 3월 대선 ‘결전’을 앞두고 안정감과 경륜을 갖춘 지도자를 선호하는 욕구도 높기 때문이다. 영남권의 한 의원은 “이 전 최고위원이 똑똑하지만 현실 정치를 안해봐서 대선 후보를 끌어오고 조화롭게 당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 우려가 있다. 60대 이상과 대구·경북에 쏠려있는 당원들이 어떻게 판단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이날 대구로 내려가 서문시장과 경북대학교에서 상인·청년들을 만났다. 이준석 바람을 당심으로 확장하기 위해 텃발 갈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준석 돌풍이 본 투표까지 몰아칠지 전문가들의 관측은 엇갈린다. 엄경영 소장은 “이준석이 뜨면 국민의힘도 떠야 하는데, 국민의힘 지지율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특히 당원들이 많은 50∼60대에서 최근 지지율이 크게 빠진 점은 이준석의 돌풍을 탐탁지 않게 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7대 3(당원 투표 70%, 여론조사 30%)의 비율을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반면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 전 최고위원이 본선에서 1·2등 할 수 있는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며 “영남 당원들이 어떤 전략적인 선택을 할지에 달려있다”고 내다봤다. 국민의힘 전통적 지지층의 ‘전략적 선택’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 전 최고위원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민주당의 호남 지지자들이 대선 승리를 위해 영남 후보를 내세웠듯, 국민의힘 지지자들도 정권 탈환을 위해 ‘확 젊어진 당 대표’를 내세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하태경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준석 돌풍의 의미는 우리당이 2030 청년세대를 아우르는 전 세대의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며 “이제 우리 당원들이 현명하게 화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적었다. 장나래 배지현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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