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서울 말고] 제주에서 자리돔을 먹는 것 / 이나연 - 한겨레

자리돔.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nbsp;
이나연 | 제주도립미술관장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프랭크 오하라다. 그의 시 중에서도 ‘너와 콜라를 마시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오하라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점심시간마다 쓴 시로 <런치 포엠스>(Lunch Poems·점심시들)라는 시집을 냈는데, 이 시는 그 시집의 대표작이다. 뉴욕의 거리를 거닐며 너와 콜라를 마시는 일이 좋다고 우회적으로 연인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은 그 담백함과 동시대성이 감상 포인트다. 당시 도시 감수성을 대표하는 콜라를 함께 나눠 먹는 이미지와 함께 점심시간에 쓰인 시 정도의 편안함과 그 행간에서 전해지는 섬세함이 감각적이다. 갑자기 좋아하는 시 타령을 했지만, 사실은 제주의 제철 음식 얘기를 하고 싶었다. 수산시장에서 자리가 팔리고, 채소 코너에 콩잎이 놓이면 여름이 코앞이구나 싶어진다. 손질도 못 하거니와 요리를 해 먹을 시간도 없으면서 괜히 이 찬란한 계절의 상징을 사다가 상을 차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뼈째로 잘게 썬 자리돔에 채소를 넣고 된장으로 양념해 물과 얼음을 넣는 시원한 자리물회에 제피를 넣어서 먹거나, 콩잎을 두세장 겹쳐 자리젓을 놓고 흰쌀밥에 싸 먹으면 여름의 시작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 같다. 뉴욕미술관의 부관장이 콜라를 마시며 거리를 산책하는 게 뉴욕의 공기를 그대로 담아내는 것처럼, 제주의 미술관에 출퇴근하는 이가 제주는 이번달부터 자리돔을 먹기 시작했다고 말하면 계절감까지 실린 제주의 공기가 전국에 전해질지도 모르겠다. 콜라의 맛은 만국 공통으로 공감대 형성이 쉬운데, 자리물회의 맛은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서 이 글은 이미 실패를 예감하고 있기도 하다. 비슷한 감성으로 좋아하는 옛 노래는 스팅의 ‘잉글리시맨 인 뉴욕’. 난 커피 안 마시니 차를 달라거나, 토스트는 한쪽만 구워달라는 가사가 시시콜콜해서 좋다. 스팅의 영국 악센트도 좋고, 신나는 노래다. 뉴욕의 합법적 이방인인 영국인임을 내세우는 이 가사를 두고 개개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흥미로운 댓글들이 유튜브 영상에 달리곤 한다. 나는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이 없는 걸 참을 수 없는 뉴욕의 한국인이라는 식이다. 제주식으로 바꿔보면 전 평양냉면은 됐으니 (또다시) 자리물회를 주세요, 정도가 되려나. 이 역시 커피와 차, 토스트 같은 전 지구적 공감대를 얻는 소재와 달라서 소통에 어려움이 있을까 걱정이 먼저다. 결론은 제주에서 진짜 로컬 체험을 하고 싶다면, 초여름엔 자리돔과 콩잎을 즐겨보시라는 거다. 고기국수나 돼지고기를 찾아 먹던 입안에 상큼한 초여름을 선물해줄 거라 믿는다. 단 두가지 음식 모두 대중화가 안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콩잎의 거친 식감과 향에 익숙지 않은 이들이 많고, 뼈째 먹는 자리의 ‘하드코어’한 식감도 비호감의 원인이긴 하다. 자리돔은 열대어라 분포지가 한정적이기도 하지만, 식용으로는 제주에서만 먹는다. 제주 사람들은 같은 제주 바다에서도 동네별로 나는 자리돔의 맛이 다르다고 하는데, 최고로 인정받는 건 보목동 앞바다에서 잡히는 연한 자리돔과 모슬포에서 잡히는 억센 자리돔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고, 그 자리에만 있어서 ‘자리’라 불리게 됐다니, 사는 동네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게 당연한 듯하다. 뼈째 먹는데다 머리까지 통째로 먹기도 하기 때문에 뼈가 연한 자리돔을 회로 먹고, 뼈가 굵고 큰 자리돔은 구워 먹는다. 발라 먹기 귀찮은 점만 빼면 구워 먹는 자리맛도 일품이다. 보목에서는 매년 6월 초 자리돔 축제도 열곤 한다.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취소됐던 축제가 올해는 열릴지 모르겠다. 코로나도 문제지만 수온 변화로 자리돔 서식처가 점점 북쪽으로 이동 중이란다. 마릿수가 아니라 킬로그램 단위로 뭉텅뭉텅 팔던 자리돔을 만날 일도 점점 줄어들게 될 것 같다.

Let's block ads! (Why?)

기사 및 더 읽기 ( [서울 말고] 제주에서 자리돔을 먹는 것 / 이나연 - 한겨레 )
https://ift.tt/3gWxdM2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서울 말고] 제주에서 자리돔을 먹는 것 / 이나연 - 한겨레"

Post a Comment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