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1월 이후 증시는 어떻게 됐을까? 약 4개월이 지나자 상황이 변했다. 거칠 것 없이 오르며 1000선을 넘었던 옛 종합주가지수는 1989년 3월부터 상승세를 멈추고 횡보하기 시작했다. 1년 넘게 박스권에 있던 주가지수는 결국 1990년 4월 600대로 곤두박질 쳤다.
물론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를 현재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언제 시행될지 모를 금융실명제를 앞두고 대주주들의 차명 지분이 대거 출회되기도 했고, 걸프 전쟁이 장기화하는 등 증시 침체의 복합적인 요인이 있었다. 재정 건전성이나 외환 보유고, 전 세계 경제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한 위상 등이 현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후진적이었다.
그러나 눈길을 끄는 것은, 1990년 증시 하락의 근본적인 원인을 실물경제 침체에서 찾은 전문가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1990년 2월 기사에서 서상룡 서강대 명예교수는 "전반적으로 실물경제의 전망이 불투명하고 비관적인데 증시만 살려놓겠다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든다. 바로 올해 초부터 꾸준히 나오던 얘기다. 지난 1월 김용범 기재부 차관은 "증시 상승세가 안정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실물경제 회복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학 박사인 이혜훈 전 의원 역시 "실물경제가 좋아서 주가가 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그만 외부 충격에도 거품이 꺼져 폭락할 수 있다"고 재차 경고했다.
실제로 현재 증시와 실물경제의 괴리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달 현대경제연구원은 실물경기의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년 동기 대비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2분기 -2.7%, 3분기 -1.1%, 4분기 -1.2%였다. 수출과 설비 투자는 회복 중인데 반해 내수 불황의 장기화와 대면 서비스업은 크게 위축돼 쉽게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요즘 주식 투자자들은 대부분 인플레이션 압력과 미 국채금리의 인상에만 주목하고 있지만, 실물경제의 침체도 증시에 영향을 미칠 심각한 변수다. 지난해 증시 활황은 유동성의 확대 덕분이었다. 즉, 시중에 풀린 통화량이 많아 주가가 오른 측면이 컸다. 그러나 지금처럼 횡보하는 증시에서는 실물경제가 중요하다. 실적은 좋지 않은데 유동성의 힘으로 급등한 종목들은 크게 하락하기 쉽다.
그나마 믿고 있던 유동성마저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만약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화폐 가치가 지나치게 낮아진다면, 기준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있다. 그러지 않으면 선진국 통화 대비 원화 가치가 지나치게 낮아져 외국계 자본이 대거 이탈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금리 인상은 결국 시중 유동성을 축소해 증시가 침체하는 결과를 낳기 쉽다.
유동성이라는 변수가 언제 국내 증시를 흔들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실을 다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견조한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업에 투자하는 건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1990년 당시 증시 침체는 얼마나 지속했을까. 과거의 뉴스를 토대로 복기해보면, 1994년에야 실물경제가 안정되며 박스권을 탈출해 1000선 위에 재안착할 수 있었다. 다시 강조하건대 그때는 현재와는 여러모로 다른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과거의 경험에서 배울 점이 하나라도 있다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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