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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은빛 기둥에서 영욕을 엿보다 - 한겨레

jabaljuba.blogspot.com
[토요판] 랜선 동남아
② 주석 광산 따라 떠난 정화의 후예들

수마트라 동쪽 방카섬 인근 벨리퉁
때 묻지 않은 관광지 겸 주석 산지
기원전부터 동남아서 앞다퉈 채굴

970년 자바섬 난파선서 주석괴 발견
해상장악력·자원·기술까지 ‘삼박자’
‘열린 동남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

쿠알라룸푸르의 상징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의 외벽은 주석의 매끈한 질감을 나타냈다는 설도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주석은 중요한 자원이고, 쿠알라룸푸르가 주석으로 일어선 도시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강희정 제공
쿠알라룸푸르의 상징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의 외벽은 주석의 매끈한 질감을 나타냈다는 설도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주석은 중요한 자원이고, 쿠알라룸푸르가 주석으로 일어선 도시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강희정 제공
인도네시아에는 천혜의 자연을 바탕으로 한 관광지가 발달했다. 옥빛으로 빛나는 바다와 새파란 하늘, 고운 흰 모래가 세파에 지친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어떤 사람들은 서핑을 즐기고, 또 어떤 사람들은 스노클링과 스쿠버 다이빙을 즐긴다.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인도로 호핑 투어를 떠나는 사람도 있고, 해양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한갓지게 펼쳐진 바닷가에서 독서를 즐길 수도 있다. 근래 새로 개발되어 아직 때 묻지 않은 관광지 중 한곳이 벨리퉁(블리퉁)이다. 수마트라 동쪽 끝에 자리한 큰 섬 방카와 가까운 곳에 있다. 방카는 제주도의 6배 정도 크기이지만 현재도 세계 주석 사용량의 3분의 1에 이르는 양을 채굴하는 유명한 주석 산지다. _______
길이 2800㎞, 폭 400㎞의 동남아 주석 벨트
방카에서 비행기로 약 40분 거리에 있는 벨리퉁은 인도네시아 국민영화 <무지개 분대>(2008)의 배경으로 유명해진 아름다운 섬이다. 영화는 마을 주민들이 종사하던 광산업이 몰락하자 가난 때문에 아이들을 돈벌이로 내몰면서 벌어진 일화를 담은 것이다. 벨리퉁 역시 주석 광산이 주산업이었던 까닭이다. 요즘 핸드폰 등 전자제품의 필수 금속이 되면서 다시 주석 열풍이 불었지만 한동안 주석광산은 사양 산업이었다. 중국인 이주노동자가 주석을 집중적으로 채굴했던 까닭에 방카와 벨리퉁은 인도네시아 다른 어느 지역보다 중국계 이주민들의 후손이 많이 살고 있다. 중국 이주민의 후손이라고는 해도 중국어를 잊어버려서 못하는 경우도 있고, 현대 표준어인 만다린어와는 달라서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런데 전통과 문화라는 것은 오랜 흔적을 남기는 것이어서 분명 중국식으로 보이는 사찰도 현지에 몇곳이 있다. 이 사원 울타리에 티베트나 네팔에서 볼 수 있는 오색 깃발인 룽타가 휘날리는 것을 보면 분명 불교사찰이다. 사찰 정면에 우스꽝스러운 두 기의 노란 탑을 세운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대웅전에 해당하는 중심 건물에는 복덕사(福德祠)라는 현판도 걸었다. 절을 뜻하는 사(寺)가 아니라 사당에 가까운 사(祠)를 쓴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이나 중국의 절과는 너무나 차이가 크다. 내부에는 아담한 관음보살도 있고, 포대화상도, 공자도, 관우도 있다. 유·불·도 삼교가 모두 모였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사원이 방카와 벨리퉁에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낯선 곳에서 고된 주석 채굴에 시달린 중국인 이주노동자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데는 역시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보로부두르에는 당시 운행하던 배가 조각 돼 있다. 9세기 초. 강희정 제공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보로부두르에는 당시 운행하던 배가 조각 돼 있다. 9세기 초. 강희정 제공
방카에는 주석 채굴의 역사를 보여주는 주석박물관이 있다. 오래전부터 외지인들이 이곳 섬들을 주목하게 된 것은 현지인들이 은처럼 빛나는 장신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양을 오가다 이 섬에 들른 외지인들은 이것이 은이라고 생각했다.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안온했던 현지인의 평화가 깨지고 외지인들이 밀려오게 된 원인이 된 까닭이다. 명나라의 역사서인 <명사>에는 방카를 마엽옹(麻葉甕)이라 지칭하고 1405년 사신을 보냈으나 조공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방카와 벨리퉁을 알고 있었으나 아직 주석 산지라고 알려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방카나 벨리퉁만이 아니다. 동남아의 주석 벨트는 멀리 미얀마에서 타이, 말레이반도,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실로 광활한 지역에 퍼져 있다. 대략적인 규모로 보면 길이가 2800㎞, 폭이 400㎞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에 이른다. 미얀마의 샨 고원에는 은, 구리, 납, 아연 광상이 있어 기원전부터 개발이 되었다. 이 일대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말레이반도를 거쳐 인도네시아 자바까지 비슷한 지질로 구성되어 있어 금, 은, 주석 광상이 상당히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아마도 ‘황금의 땅’ 수완나부미가 저마다 다른 지역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이런 광상의 분포가 한몫했을 것이다. 사실 주석을 채굴하는 일은 고된 노동의 연속이다. 무엇보다 종일 물에 발을 담그고 있어야 한다. 그것도 맑은 물이 아닌 흙탕물이다. 동남아 주석 벨트의 주석은 철광석이나 석탄처럼 땅속을 파고들어가는 광산에서 캐는 것이 아니다. 동남아의 주석 벨트는 대부분 표사광상(漂砂鑛床)이라 강이나 바다 속 충적토에 주석 알갱이들이 섞여 있다. 그러니 사금을 캐듯이 흙을 떠서 물에 일어야 얻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처음에 괭이로 흙을 파내 이를 강물에 씻어가며 주석 알갱이를 골라냈다가 점차 기계의 힘을 빌려 대규모로 흙을 파고 물로 흘려보내는 방식을 썼다. 보통 광석을 곡괭이로 캐내는 것에 비하면 이만저만 손이 가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대규모로 인력이 동원되었고, 인력 대다수는 중국에서 건너왔다. 방카와 보르네오, 말레이반도 페락 등지의 주석 광산이 알려지자 청나라 장삼이사들이 앞다퉈 동남아행 배를 탔다. 기근과 각종 민란으로 배를 곯던 이들이다.
보로부두르 사원, 800년께,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 강희정 제공
보로부두르 사원, 800년께,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 강희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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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를 건너온 ‘백색 골드러시’
마침 이때 나폴레옹 전쟁으로 전투가 끊이지 않던 유럽에서 병사들에게 제공할 전투식량을 오래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통조림이 발명되었다. 병조림이 먼저 개발됐으나 쉽게 깨지는 병과 달리 어지간해서는 부서지지 않는 통조림은 마치 전쟁을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 바로 이 통조림 캔의 재료로 주석의 수요가 다락같이 높아져 너나없이 주석 개발에 뛰어들었다. 금을 찾아 미 서부로 몰려들던 것에 비유해 이 열기를 ‘백색 골드러시’라고 부를 정도였다. 주석 원광이 흰빛을 띠기 때문에 ‘백색’이 앞에 붙은 것이다. 우리에게도 주석은 낯설지 않다. 한때 동남아 관광기념품으로 인기 있던 주석 컵이나 쟁반 때문이 아니다. 바께쓰라고 부르던 양동이, 각종 세공품의 재료인 양철이 바로 철판에 주석을 입힌 것이다. 단단한 강철에 주석을 입힘으로써 철의 가장 큰 단점인 녹이 슬지 않고, 납땜을 쉽게 하게 되어 폭넓은 용도로 쓰이게 되었다. 양철 역시 개발되자마자 전세계로 퍼졌기에 <오즈의 마법사>에도 양철나무꾼이 나오고,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양철북>도 나올 수 있었다. 우리나라 지붕이나 담벼락을 덮곤 했던 양철도 아마 동남아에서 생산한 주석을 썼을 것이다. 주석이 먼 곳에 있지 않듯 동남아도 먼 곳에 있지 않았다. 통조림과 양철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주석 수요도 급격하게 줄었다가 근래 전자제품용 땜납, 핸드폰 등으로 그 수요가 다시 급증하고 있다. 원래 주석 채굴과 가공으로 유명한 기업이 말레이시아의 ‘로열 슬랑오르’다. 말레이시아 13개 주 가운데 하나인 슬랑오르도 17세기부터 네덜란드가 주석 교역을 독점했던 지역이다. 지금은 말레이시아의 상징처럼 유명해진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빌딩이다. 한·일 합작으로 건설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페트로나스 타워는 마치 거대한 금속제 첨탑처럼 보인다. 타워의 외벽을 스테인리스와 유리로 덮은 것은 주석의 매끈한 질감을 나타내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다. 그만큼 말레이시아에서 주석은 중요한 자원이고, 쿠알라룸푸르가 주석으로 일어선 도시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곤륜노 도용, 664년께, 1971년 정인태 묘 출토, 섬서역사박물관. 강희정 제공
곤륜노 도용, 664년께, 1971년 정인태 묘 출토, 섬서역사박물관. 강희정 제공
수완나부미나 황금반도(Golden Chersonese)나 사실 신기루 같은 말이다. 엘도라도랑 다를 게 무엇인가? 그럼에도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인도나 아랍 사람들이 황금의 땅을 찾아 동남아로 항해한 것은 보이지 않는 파랑새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미지의 땅에서 실제로 얻는 소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확실한 소득은 금속이었다. 주석 벨트의 광상은 주석만이 아니라 금, 은과 철을 모두 포함한다. 중국 기록에는 베트남 중부에 있었던 짬족의 나라 임읍(林邑)에서 445년에 금 1만근, 은 10만근, 구리 30만근을 보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때 한 근을 얼마로 보든지 막대한 양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2003년 이를 뒷받침하는 수중 발굴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치르본 앞바다에서 발견된 난파선에서 철을 비롯해 엄청난 양의 주석괴, 납괴가 나왔다. 함께 발굴된 중국 화폐로 인해 대략 970년께에 난파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배는 길이가 30m에 이르며 믈라카 인근 지역에서 건조된 배로 보고 있다. 25만점의 발굴품 중에 도자기가 65%에 이르며, 다양한 유리 제품도 있었다. 수하물로 보면 중국과 수마트라, 말레이반도에 이르는 넓은 해역을 오가며 교역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배는 ‘열린 지역으로서의 동남아’를 여실히 보여준다. 발굴된 주석괴와 납괴는 인도네시아 산물로 추정된다. 그 형태와 크기가 일정해서 이미 이 시기에 광물을 거래하기 위해 얼마간 광물의 규격화, 표준화가 이뤄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다양한 금속괴들은 금속의 함량을 일정하게 맞추는 제련과 이 과정을 거쳐 얻어낸 금속을 일정한 크기의 괴로 만드는 주물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있었다는 것도 짐작하게 해준다. 여느 난파선처럼 이 배 역시 어부들의 그물에 중국 도자기가 걸려 나오는 바람에 발견되었다. 천년 전, 가라앉기 전의 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수마트라 동쪽 끝에 자리한 큰 섬 방카에서 비행기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벨리퉁. 인도네시아 국민영화 &lt;무지개 분대&gt;(2008)의 배경으로 유명해진 아름다운 섬이다. 강희정 제공
수마트라 동쪽 끝에 자리한 큰 섬 방카에서 비행기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벨리퉁. 인도네시아 국민영화 <무지개 분대>(2008)의 배경으로 유명해진 아름다운 섬이다. 강희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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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이 부른 부와 침탈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보로부두르에는 당시 운항하던 배가 조각되어 있다. 보로부두르는 마타람 왕국 샤일렌드라 왕조가 지배하던 800~825년께에 건립된 불교사원이다. 그러므로 이 배 역시 8~9세기 자바 해역을 운항하던 배가 모델이었을 것이다. 배가 중요한 운송수단이었음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보로부두르에는 배가 묘사된 부조가 7점 있다. 당나라 구법승 의정(義淨)이 중국 광저우와 수마트라 남단에 있던 스리위자야(슈리비자야) 왕국의 수도 팔렘방을 오갈 때 탔던 배도, 샤일렌드라에서 스리위자야로, 다시 남인도 촐라 왕국으로 물건을 실어 나르던 상선도 이런 배였을 것이다. 동남아와 인도양을 왕래하던 배는 이처럼 한가운데 커다란 돛이 달려 있고 선체 양옆에 긴 사다리 같은 부재를 갖췄다. 실제로 이런 배로 장거리 항해가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전통 배 건조기술자가 부조와 똑같이 배를 만들어 자카르타에서 마다가스카르를 거쳐 서아프리카 가나까지 항해한 바 있다. 2003년 8월부터 2004년 2월까지 6개월 걸린 항해였다. 9세기에 인도네시아에서 아프리카까지의 항해가 가능했음을 입증한 셈이다. 자바와 말레이반도에서 사용한 대표적인 배가 종(djong)이다. 중국의 정크선처럼 승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용도로 폭넓게 쓰였고 평균 400~500t급 선박이 움직였다. 인도네시아는 일찍이 큰 화물선을 잘 짓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대 기록인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에는 곤륜에서 온 배라는 ‘곤륜박’(崑崙舶)에 600~700명이 승선하여 원거리 항해를 한다고 했다. 특이하게도 이 배는 목재와 목재를 연결하는 데 못을 쓰지 않고도 물이 스미지 않는다고 썼다. 이때 곤륜은 오늘날의 인도네시아다. 곤륜에서 온 노예 곤륜노는 조선시대 <전우치전>의 모티프가 되었다고도 한다. 해운이든 하운(河運)이든 물을 이용한 이동이 중요한 동남아에서 튼튼하고 빠른 선박을 짓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로써 획득한 해상 장악력과 풍부한 금속 자원은 동남아 각지 왕국의 왕과 술탄에게 막강한 부를 안겨주었다. 반대로 이문을 남기게 해준 자원들은 서구의 침탈을 야기했는데 화물 운송에 적합한 종은 기민한 서양 배와의 전투에서 불리했다. 서서히 쇠퇴할 수밖에 없었던 교역용 배의 운명이다. 방어에 불리한 ‘열린 지역’의 한계였을까?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소장
▶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는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아시아 지역연구의 새 패러다임을 구축하기 위해 40년간 지역연구에 매진해왔다. 동남아시아의 경제·사회·문화적 중요성이 커진 신남방 시대, 연구소는 그동안 연구 성과에 바탕을 두어 멀지만 가까운 이웃 동남아의 다양한 면모를 전한다. 랜선 여행을 하듯이 흥미롭게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를 소개한다. 격주 연재.
식민지기 주석 광산 그림. 주석의 수요가 늘자 너나없이 주석 개발에 뛰어들어 이 열기를 ‘백색 골드러시’라 부를 정도였다. 19세기, 방카 주석박물관. 강희정 제공
식민지기 주석 광산 그림. 주석의 수요가 늘자 너나없이 주석 개발에 뛰어들어 이 열기를 ‘백색 골드러시’라 부를 정도였다. 19세기, 방카 주석박물관. 강희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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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31, 2020 at 07:59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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