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삼성전자에서는 직원들을 상대로 사측이 동의서를 받고, 이에 노동조합은 부동의서로 맞서고 있다는데요.” 어제 사무국장인 정 노무사는 자문노조 현황을 보고하면서 말했다. 순간, 나는 삼성전자노동조합이 사측의 인사제도 개편 추진에 대응하고 있다는 것보다는 사측이 동의서를 받아내고 있다는 데에 꽂히고 말았다. 사용자가 노동자들로부터 동의를 받아내고 있다니. 20여년을 주구장창 노동변호사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면서 살아오다 보니 가끔 이렇게 꽂히는 것이 있다.
2. 최근 미국 출장에서 돌아온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보다 자유롭고 젊어지게 할 인사 혁신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지난 29일 연공서열을 타파하고 소통의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인사제도 혁신안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부사장·전무’ 직급을 ‘부사장’으로 전격 통합하는 등 임원 직급단계를 축소하고, 기존 8~10년인 ‘직급별 표준 체류기간’을 폐지해 젊고 유능한 경영자를 조기 배출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 30대 임원과 40대 CEO도 나올 수 있도록 체계를 개편한다는 ‘승격제도 및 양성제도’에 관한 것이고, 다음으로는 성과에 따라 누구나 상위평가를 받을 수 있는 ‘절대평가’로 성과관리체제를 전환하면서 부서장 평가 외에 동료평가제를 도입한다는 ‘평가제도’에 관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승격제도 및 양성제도에 관하여 보면, 임직원의 직급체계를 개편해서 그 직급단계를 축소해 통폐합하게 되면 폐지되는 직급으로 승급할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니 그 직급에 따른 처우를 보장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약 모든 직원에게 폐지되는 직급 중 최상위 직급의 처우를 보장하게 된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기회 상실에 따른 불이익을 받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리고 평가제도에 관해 보면, 현재 삼성전자는 임직원을 ‘EX(Excellent)-VG(Very good)-GD(Good)-NI(Need improvement)-UN(Unsatisfactory)’ 5개 등급으로 나눠 평가하고, EX등급은 10%, VG등급은 25% 등 등급별 전체 임직원 비율이 제한돼 있는 상대평가 구조다. 개편안은 EX등급 비율을 유지하되, VG등급 비율 제한을 폐지하고 절대평가로 나머지 등급을 매기는 방식이라는 것이라서 현재보다 많은 노동자들이 낮은 등급을 받아 성과급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연봉 인상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동료들 상호 간 평가하는 동료평가제도에 따른 문제를 제외하고서 보더라도 노동자들에겐 충분히 문제가 있다고 볼만한 것이다. 물론, 위와 같은 사측의 인사제도 혁신안은 부서장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서 직급별 체류기간 없이 부사장 등으로 높이 승진할 수도 있으니 기존보다 자유롭고 젊어지게 할 제도일 수가 있겠다. 그렇다고 반드시 젊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8~10년 이상 근속하지 아니한 젊은 노동자가 부사장 등으로 당연히 임명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결국 사용자 마음일 수밖에 없다. 인사권자인 사용자가 임명해야만 젊은 노동자는 부사장 등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삼성전자를 보다 자유롭고 젊어지게 할 인사 혁신안이라고 이재용은 밝혔지만, 보다 자유롭게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개편하겠다는 것 말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에 대해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조 사무국 담당은 “이번 인사제도 개편안은 성과에 따라 누구나 상위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말로 현혹하고 있다”며 “고과권자의 권력은 강화하고 직원들 간에는 경쟁과 감시를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고 한 인터넷언론에 보도됐다. 앞에서 본 개편안의 주요 내용을 볼 때에 이 같은 노조 담당자의 주장은 타당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다만, 부서장 등 고과권자의 권력 강화란 결국 삼성전자에서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권한 강화로 귀결되는 것이라는 점을 나는 덧붙이고 싶을 뿐이다.
3. 이런 인사제도 개편안에 대해 노동자들은 과연 동의할까.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자신하는 자들은 동의할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능력이 출중해서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노동자라고 해서 당연히 동의할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평가권자가 높이 평가할 거라고 자신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선뜻 동의하진 못할 것이다. 혹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기존 제도에 따른 처우보다 나은 수준을 보장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현재 사측의 개편안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사측의 인사제도 개편안은 노동자동의를 장담하지 못한다. 아니, 노동자들이 그것이 자신 처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지 따져보면 볼수록 사측은 동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삼성전자에서 사측이 스스로 그 동의를 받아내기 위해서 나섰다는 말이겠다.
4.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해당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다면 근로자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94조 제1항 단서). 여기서 취업규칙이란 노동자에 대한 근로조건과 복무규율에 관한 통일적인 기준을 정한 제반 준칙을 말한다. 삼성전자의 이번 인사제도 개편안은 취업규칙의 변경인 것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일부 노동자들에게는 기존 제도보다 불리하게 변경되는 것일 테니 삼성전자 전체 노동자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삼성전자에서 사측이 직원들을 상대로 해서 동의하도록 조직한다는 것이겠고, 이에 맞서 노동조합은 그 부동의를 조직한다는 것이겠다. 그래서 어제 사무국장은 내게 이런 상황을 보고했던 것이겠고, 나는 관심이 꽂혀 이렇게 끄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관한 법원판례가 어떻다고 나는 구질구질하게 살펴볼 생각은 없다. 위 근기법에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있어 근로자과반수의 동의란 근로자집단에 적용되는 것이므로 집단적인 동의여야 하는 것이니 회합해서 논의해야 하는 동의여야 한다. 개별적으로 하는 동의로는 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우리 법원판례도 인정한다. 그런데 여기까지만이다.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불이익변경하는 데 대해 하는 노동자동의인 것이니 당연히 사용자의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노동자 스스로 회합해서 자유롭게 토의, 의결하는 동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 노동현장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사용자가 부서별로 부서장이 부서원을 모아놓고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는 방식까지도 인정한다. 우리 법원은 이를 인정하는 판결을 수도 없이 해오고 있다. 그래서 삼성전자에서 사측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해서 동의서를 받고 있다는 말을 나는 어제 듣게 된 것이다.
지난 25일 매일노동뉴스는 삼성전자에서 “지난시기 회사가 반강제적으로 인사제도를 개악했던 사례들이 비일비재했다. 2009년 리프레시 휴가를 폐지했을 때도 그랬고, 2014년 임금제도를 회사가 일방적으로 변경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는 내용이 포함된 성명서를 노조가 사내메일로 발송하려는 걸 사측이 막았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이 뉴스 기사에는 삼성전자는 “회사는 당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적법한 절차에 의해 진행해 직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었으므로, 작성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수정을 요구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런 보도를 통해서 노조성명서의 내용처럼 사측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반강제적으로 동의서를 받았다고 믿지 못하더라도 당신은 적어도 사측이 그동안 직원 과반수의 동의를 조직해왔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해오던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전자만이 아니다. 우리 노동현장에서는 취업규칙을 불이익변경하려는 사업장마다 사용자들은 너무도 당당하게 이렇게 해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하다. 법적인 제동을 가하지 않는 한 말이다.
5. 사용자와의 근로계약관계에서 노동자의 임금 등 근로조건은 그 근로계약의 내용인 것이고, 당연히 당사자인 노동자와 사용자 간 합의로 정하고 변경해야 한다. 이것은 노동자 보호를 위한 노동법리까지 나아갈 것도 없이 그저 계약법리로 볼 때에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계약의 일방 당사자인 사용자가 변경할 수 있는 것이라면 노동자를 사용자의 처분에 따라 복종해서 일하는 노예로 취급하는 것이다. 근로계약을 대신해 취업규칙을 통해서 근로계약관계의 내용에 관해서 정하게 되는 경우라면, 사용자가 취업규칙의 내용을 불이익하게 변경함에 있어서는 그걸 적용받게 될 노동자와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근기법은 근로자과반수 동의라는 절차를 규정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근로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근로자의 의사를 사용자가 제압해서 할 수 없는 것처럼, 사용자의 간섭 없는 상태에서 자유로운 근로자집단의 동의를 통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어야만 한다. 이렇게 명백한 것임에도, 이것이 명명백백한 법리임에도 아직 이 대한민국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이번 삼성전자 사례를 통해서 나는 이걸 다시 한번 재확인하면서 이렇게 이 나라에서 취업규칙 법리를 규탄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노동자동의를 보장하라.’ ‘노동자를 노예 취급 말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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