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이란주의 할 말 많은 눈동자
중국동포 박주영
차별에 익숙해진 이주민 2세대
‘조선족’ 들키고 싶지 않던 마음
두 정체성, 오히려 세상 넓게 봐
차이와 다름 이해하는 사회 되길
중국동포 박주영(18)은 아기 때 부모님 품에 안겨 처음 한국에 왔다. 초등생 시절은 중국에서, 중고생 시절은 한국에서 자라며 두 언어를 품에 안았다. 초록색 한국 여권을 받은 것이 인생 최고 기쁜 일이었다는 주영의 모어는 한국어다. 그리고 주영의 ‘우리나라’는 당연히 대한민국이다.
부모님과 교류하는 조선족 어른들은 대부분 가족을 중국에 두고 혼자 와서 고생하고 계세요. 다들 정말 열심히 사시죠. 나의 부모님은 그중 제일 열심인 분들이에요. 어릴 적 단칸방에 살 때, 아빠는 멀리서 일해서 주말에만 집에 오셨어요. 중국어 강사였던 엄마는 밤에도 수업이 있어서 나 혼자 집에 있곤 했어요. 텔레비전과 아주 친해져서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였죠. 가난했어도 엄마 아빠는 나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많이 애쓰셨어요. 덕분에 나는 부족함을 느낀 적이 없어요. 참 감사해요. 특히 엄마는 내가 아는 50대 여성 중에 가장 사랑스럽고 현명한 분이죠. 내 롤 모델이에요. 나는 엄마와 상의한 대로 생명과학을 공부하려고 해요. 생명 현상을 연구해서 인류의 생존과 복지를 위해 일하고, 그 전문성을 기반으로 소외되는 이들 없이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중국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소수민족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에, 선생님이 “우리 반 주영이가 조선족”이라고 말했어요. 나는 자랑스러웠어요. 그런데 한국 중학교에서 선생님이 친구들 있는 데서 그 말을 할 뻔했을 때는 정반대로 마음이 조마조마했어요. 내가 조선족인 것을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 뒤로는 아주 필사적이었어요. 운 좋게 해외문화체험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잘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이 생겼어요. 인천공항 입국심사대가 내국인용과 외국인용으로 나뉘어 있잖아요. 친구들에게 안 들키려고 내국인 줄에 섰죠. 순서를 기다리면서 안절부절못했어요. 또래 친척과는 이런 말도 나눴어요. 만약 남자친구 생기면 조선족이라고 얘기할 거야? 아니 못할 것 같아. 만약에 한국인과 결혼하게 되면 우리 쪽 하객은 전부 조선족, 그쪽 하객은 전부 한국 사람, 이러면 어쩌지? 아, 싫다. 제발 안 들켰으면 좋겠다. 이게 우리에게는 정말 절실한 문제죠. 그럼에도 울컥해서 커밍아웃한 적이 있어요. 영화 <청년경찰>, <범죄도시>에서 악당이 다 조선족이잖아요! 친구들이 조선족이라는 말을 영화에서 처음 접했던가 봐요. 조선족이 뭐야? 북한 사람이야? 중국 사람인가?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야. 애들 말에 불끈 화가 났어요. 하지만 꾸우욱! 누르고 아주 덤덤하게 말했어요. 나 조선족인데, 중국 국적 가지고 있어도 같은 한민족이야. 속으로는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애들은, 아 진짜? 하고는 끝이더라고요. 코로나 때문에도 무척 마음 졸였어요. 조선족이 코로나 걸렸다는 소식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죠. ‘확진자가 조선족이다’ 하게 되면 신상 다 털리고, 민폐라는 소리 엄청 들을 것이 뻔하니까요. 자주 듣는 민폐 소리에 한 번도 당당하게 반박하지 못해서 속상해요. 가끔 조선족 어른들이 교양 없어 보이는 행동을 하면, 반박은커녕 나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중국거리 지나면서 속으로 외쳤어요. 저기는 나랑 아무 관계 없어! 하지만 억울한 마음도 있어요. 질서나 교양은 사회마다 다르잖아요. 우리나라는 중국보다 질서 있고 조용한 반면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데, 중국은 다소 질서 없이 보이지만 서로 안 좋은 모습을 보이더라도 이해해 주는 편이거든요. 인정 많은 사회라고 할까요. 물론 한국에 사는 조선족 어른들도 좀 달라질 필요가 있지만, 서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다양한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거나 이주민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워본 적이 없는데, 그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기면 좋겠어요.
작년에 ‘전국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어요. 그 준비를 도와준 아나운서가 이런 말을 했어요.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두 가지 언어를 배울 기회가 있으니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다고, 아주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그런 칭찬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그 전에는 내가 중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조선족과 연관되니까 오히려 부끄러웠거든요. 항상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어요.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내가 불편함을 느끼고 나 자신을 숨기고 싶었던 것은,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차별 때문이었다는 것을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똑같겠구나, 나부터 용기 내어 말해야겠구나! 이 글에도 내 이름을 밝힐까 말까 고민했는데, 지금 피하면 나중에 또 피해야 하잖아요. 내가 먼저 시작하면 다른 친구들도 용기를 낼 수 있겠지요! 그 대회에서 올해 대상을 받은 토고 친구도 내 이야기를 듣고 ‘직접 목소리 내는 일’에 관심 갖게 되었다고 해요. 또 최근 알게 된 고려인 친구들은 주변 친구들 목소리를 모으고 있대요. 고려인 아이들 중에 한국어 배우는 데 별 관심 없는 친구들이 상당히 많은데, 어차피 커서 막노동이나 할 텐데 꼭 한국어를 잘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더래요. 너무 절망적이고 아픈 말이잖아요. 그런 목소리를 모으고 사회에 잘 전해서 작은 희망이라도 만들어내면 좋겠어요. 이주민 2세대 친구들이 차별받는 데 익숙해져서 자신을 숨기고 장점과 재능을 경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고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면 좋겠어요. 자기 출신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사회, 피부색 때문에 눈총받지 않는 사회, 자기 미래가 희망 없다 쉽게 단정 짓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 말이에요.
※연재를 마칩니다. 이란주 대표님과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주말뉴스 <s-레터>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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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일꾼. 국경을 넘어와 새 삶을 꾸리고 있는 이주민들의 그 이야기를 풀어내 당사자 시점으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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