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장애인 스케이터 코치 꿈꾸는 진호와 엄마
첫돌 발달장애 진단…스케이터와 찰떡궁합
폭력 남편과 결별하고 엄마 홀로서기 꿈꿔
스케이터가 되고 싶은 진호(가명)가 지난달 26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분당올림픽스포츠센터 스케이트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성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진호(가명·16)가 빙판을 가르자 새하얀 얼음 부스러기가 길을 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아이스링크 실내 연습이 제한되면서 몇달 만에 얼음 위에 섰지만, 진호의 몸짓은 자연스러웠다. 속도를 끌어올릴 땐 양팔을 빠르게 번갈아가며 낸 추진력으로 무섭게 내달렸다. 쉬어 갈 땐 이 정도 ‘날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먼 곳을 바라보며 여유 있게 얼음을 탔다. 영락없는 쇼트트랙 선수의 모습이었다. 빙판 위의 ‘쇼트트랙 선수’를 빙판 밖의 엄마(50)가 지긋이 바라봤다. 지난달 26일 경기 성남 분당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만난 엄마의 시선은 진호에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진호가 아이스링크에 들어가기 전 엄마는 쪼그려 앉아 진호의 스케이트화의 끈을 꼼꼼하게 매만졌다. 3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엄마의 표정은 밝다. “조금만 끈을 덜 묶으면 다치기 쉽고, 너무 세게 묶으면 아파서요.” 어느 정도로 단단하게 끈을 묶어야 하는지는 엄마만 안다.
진호는 첫돌이 지나도 사람들이 부르는 자신의 이름에 반응하지 않는 아이였다. 친척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도록 했다. 발달장애(지적장애) 진단이 나왔다. 아이는 자라면서 극도로 산만한 행동을 보였다. 엄마는 “진호가 집안에서 티브이(TV)를 안고 네번이나 떨어졌다”며 “너무 산만해서 일곱살까지 캐리어(아기띠)에 업고 다닐 정도였다”고 말했다. 엄마는 진호의 앞날이 걱정됐다. “모든 장애아 부모가 그럴 거예요. 내가 먼저 죽으면, 얘는 어떡하지 하면서요.” 하지만 진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만난 ‘공익요원 선생님’ 덕분에 엄마에게도 희망의 빛이 비쳤다. 학교 장애반 아이를 도와주는 공익요원이 마침 인라인스케이트 국가대표 출신이었고, 진호를 가르쳐주겠다며 두팔 걷고 나섰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토요일에도 진호를 만나 인라인스케이트를 가르쳐줬고, 진호도 곧잘 탔다. 국가대표 출신인 선생님이 “진호가 재능이 있다”고 했다. 운동치료 목적으로 시작한 인라인이었지만 진호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드러냈고, 열한살이던 2015년엔 인천인라인월드컵에 출전해 처음으로 입상을 했다.
‘그래도 크면서 말이 늘지 않을까….’ 진호는 대여섯살 때부터 장애인 바우처로 정부에서 지원받는 인지·언어치료를 받았다. 엄마는 내심 기대했다. “열두살 정도면 어느 정도 판가름 난다고 하더라고요. 말을 제법 할 수 있는 애와 그렇지 않은 애가.” 진호는 후자였다. 열여섯 진호는 여전히 “네” “아니오” “스케이트 좋아요” “파이팅” 정도만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엄마는 실망하지 않았다. 스케이트와 만남은 이 무렵 우연히 이뤄졌다. 인라인을 잘 타던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진호는 장애인 대상 무료 스케이트 강습에 참여했다. “다른 애들은 모두 제대로 발도 못 떼고 넘어지는데, 진호만 인라인을 배워서인지 바로 타는 거예요.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그날을 떠올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한음 올라갔다. 엄마는 아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 시키고 싶었다. “어릴 때 수영이나 태권도도 했지만 집중을 잘 못하고 잘 늘지도 않았거든요. 스케이트는 진호가 싫증도 내지 않았고, 볼 때마다 자세가 좋아지는 게 제 눈에도 보였어요. 계속해야겠다 싶었죠.” 진호의 수상 경력만 봐도 진호가 스케이트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2016년 장애인스페셜올림픽 코리아 전국동계(빙상)대회 동메달, 2017년 제1회 성남시의회의장배 생활체육 빙상대회 금메달, 같은 대회의 2회 대회에서는 종합 준우승. 2018년 경기도 장애인 빙상경기연맹 입상, 안양시장배 전국장애인 빙상대회 수상, 제17회 전국장애인 춘천 동계체전 개인 500m 은메달, 1000m 은메달…. 장애인 쇼트트랙 유망주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결과였다. 하루하루 실력이 늘었다. 이날 엄마가 메고 온 큰 배낭은 열개가 넘는 메달과 트로피 두개로 가득 찼다. 꽤 무게가 있어 보였지만 그래도 엄마는 “하나도 안 무겁다”고 했다.
진호(가명)가 지난달 26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분당올림픽스포츠센터 스케이트장에서 연습을 시작하기 전, 어머니가 스케이트화를 신겨주고 있다. 성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엄마는 진호의 스케이트 강습과 시합을 모두 쫓아다니며 뒷바라지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러나 속은 곪고 있었다. 진호 아빠는 아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택시 사업을 하기 위해 많은 대출을 받았으나 갑작스러운 수해로 차량이 침수되고 파손되면서 큰 빚을 지게 됐다. 이후엔 알코올의존증과 우울증에 빠졌다. 엄마는 한달에 3만원만 쓰면서 버티던 때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진호 아빠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제대로 된 수입이 없을 때였다. 밥은 구청에서 나눠주는 도시락으로 해결했고, 웬만한 곳은 모두 걸어 다녔다.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살았어요. 그래야 한달에 3만원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진호와 연년생인 누나에 대해서도 “동생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엄마 때문에 혼자 스트레스를 견뎠다”고 미안해했다. 진호 아빠는 사업 실패에 따른 분노를 모두 아내와 진호, 진호 누나에게 쏟아냈다. 처음엔 폭언이었지만, 물리적인 폭력으로도 이어졌다. 폭력은 스스로에게도 향해서 집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했다. 잠시 동생 집에서 떨어져 살기도 했지만 다시 같이 살게 되자 지옥이 시작됐다. 올해 들어 진호 아빠가 흉기로 아내와 아이들을 위협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엄마는 결국 올해 3월 용기를 내 이혼 절차를 밟았다.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는 게 아니더라도, 위협하고 소리 지르면 진호도 위축되죠. 애들을 봐서 참으려고 했지만….” 엄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이혼을 했지만 당장 살 곳이 없었다. 이혼 후에도 예전처럼 아이 둘과 함께 시어머니가 사는 집 아래층에서 쭉 지내고 있다. 진호 아버지는 다른 지역에서 동생과 함께 산다. 이혼한 뒤 시어머니는 엄마에게 “집을 구해서 나가라”고 했다. 다행히 최근 월드비전의 보증금 지원으로 세 식구는 이달 중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세임대주택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하지만 다달이 월세 20만원과 별도의 이자를 내야 계속 살 수 있다. 이혼한 뒤 진호 아빠가 보내는 양육비 140만원에 기대고 있지만, 그마저도 온전하지 않은 상황이다. 진호 아빠가 양육비를 제때 보내주지 않아, 그때마다 연락해 독촉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진호의 스케이트 강습비, 지상훈련비, 스케이트장 이용료, 장비 구입비까지 매달 들어가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진호는 새 스케이트 살 돈이 없어 발에 맞지 않는 스케이트를 타고 훈련하다 발톱이 시커멓게 멍들고 빠질 뻔한 경험도 있다. 진호는 빙판에서도 스케이터 전용 장갑을 끼지 못했다. 저렴한 장갑에다 엄마가 손끝 부분을 다치지 않도록 뭉툭하게 천을 덧대 ‘개조’한 장갑을 낀 채 달렸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느라 집에서 할 수 있는 수면 양말 만들기 같은 부업만 했던 엄마는 요즘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 중이다. 진호가 학교에 갔을 때나 다소 긴 시간 훈련을 받을 때라도 돈을 벌어야 이혼 후 ‘홀로서기’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서다. 엄마의 꿈은 진호가 장애인 스케이터 코치가 되는 걸 보는 일이다. 진호가 몇년째 질리지 않고, 좋아하며 잘하는 일로 엄마가 없더라도 먹고살 수 있길 바란다. 또 내년에 고3인 진호 누나도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갔으면 한다. 진호 누나의 꿈은 유치원 선생님이다.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쉬지 않고 빙판을 20분가량 돌던 진호가 입구에 선 엄마에게 다가왔다. 손뼉을 마주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파이팅!”
스케이터가 되고 싶은 진호(가명)가 그동안 대회에서 받은 메달 중 일부. 성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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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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