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시베리아의 이방인들 장마리 지음 l 문학사상 l 1만4500원 장마리(
사진)의 소설 <시베리아의 이방인들>은 책 제목처럼 시베리아 벌목장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다. 이 멀고 낯선 땅을 찾은 이방인들은 준호와 지석. 각각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온 이들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제재소를 물려받아 시베리아산 소나무를 구하러 온 남쪽 출신 준호와 당 비서의 아들로 러시아에 유학해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서 시베리아 벌목장 소장으로 부임한 북쪽 출신 지석이 목재 거래 건으로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 “당신은 내 동지가 될 수 있습네까?” “기꺼이 친구가 되겠습니다.” 소설 프롤로그에서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분단의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한 독자에게 이런 도입부는 긴장과 흥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남과 북 사이의 목재 거래라는 소재부터가 호기심을 자아내는데, 시베리아 벌목장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서 신뢰를 준다. “종훈이 엔진 톱을 켜고 톱날을 휘둘러 잡목부터 쓸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어도 단단히 굳은 얼음 알갱이가 사납게 얼굴을 할퀴었다. 주저앉아 비탈 아래로 나무가 쓰러지도록 삼각형으로 본을 떴다. 톱질을 하고 삼각형 본을 발로 차면서 넘어간다아아!라고 외쳤다. 50미터에 달하는 소나무가 살 찢어지는 소리를 크게 내며 눈밭 위로 쓰러졌다. 눈보라가 그칠 때까지 고개를 처박고 기다렸다.” 당 비서인 지석의 아버지는 개성 공단 조성을 자신이 관여한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꼽을 만큼 개혁적인 인물이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에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학하면서 바깥 세상의 공기를 맛본 덕분에 지석은 북한 사회의 축도라 할 벌목장의 강압적이고 부조리한 구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것을 개선하고자 한다.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일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인가를 우선 따져봐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에 대한 보상이 필요했다. 고되고 힘든 일을 하는데 정당한 대가도 없이 의무와 책무만 강요한다면 성취감이 생길 리가 없었다.”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고 남쪽 목재상과 거래를 튼 것이 이런 판단에 따른 것이었지만, 부소장으로 대표되는 기존 질서는 그런 변화에 완강하게 저항한다. 결국 쫓기는 신세가 된 지석이 준호의 ‘탈북’ 제안을 거부하고 제3의 길을 택하는 소설 결말에서는 최인훈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떠오르기도 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문학사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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