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레저팀장의 픽 - 물회 탐구생활

영화 '낙원의 밤'의 장면. 제주도 배경으로 끔찍한 폭력이 벌어지는 영화에서 의외로 물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 영화 장면 캡처.
실제로 영화에서 물회는 중요한 소재입니다. 남녀 주인공 태구(엄태구)와 재연(전여빈)의 소울푸드이자, 두 주인공의 정서를 잇는 매개로 등장하지요. 하나 물회라면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여행기자에게, 영화 속 물회는 허점투성이였습니다. 어떤 장면이 옥의 티였고, 나아가 진짜 제주 물회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물회만큼 지역색 뚜렷한 음식도 드뭅니다.
“이모 잘 먹을게요.”
이 집 물회

제주도 제주시에 먹은 한치물회. 한치물회는 제주 관광객을 겨냥해 개발한 음식이다. 손민호 기자
다시 재연의 대사를 인용합니다. 불치병에 걸린 재연이 이 집 물회 맛을 제 목숨에 빗대 소개하는 대목입니다. 제주도에서 물회 드셔보셨지요? 메뉴판에 ‘물회’가 있던가요? 물회는 개별 음식이 아닙니다. 찌개에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찌개가 있듯이 물회는 자리물회, 한치물회, 전복물회, 소라물회 등이 있습니다. 경북 해안에는 꽁치물회도 있고요, 경주에선 한우물회도 팝니다. 디테일이 살려면 재연은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난 자리물회, 넌?”
영화 속 물회의 정체

영화 '낙원의 밤'에 나온 물회. 뿔소라와 빨간 국물이 보인다. 제주 전통 물회가 아니다. 사진 영화 장면 캡처.
국물이 빨갛습니다. 고추장을 풀었습니다. 제주 전통 물회가 아닙니다. 관광객용 메뉴입니다. 사실 소라물회 자체가 최근에 개발된 음식입니다. 제주 전통 물회는 누렇습니다. 제주에선 간을 맞출 때 된장을 풉니다. 제주 사람인 양 행동하는 재연이 관광객 음식을 앞에 놓고 “육지 사람은 잘 모르는” 물회집이라고 말합니다. 디테일이 엉성합니다. 감독이 물회를 안 좋아하나, 잠깐 의심했었습니다.
초장 설탕에 뿌려서

울릉도에서 먹은 꽁치물회. 전통적인 경북 방식의 물회다. 고추장에 생선, 그리고 채소만 들어있다. 물은 각자 알아서 넣어 먹는다. 손민호 기자
태구의 대사입니다. 초장에 설탕 뿌린 물회라. 동해안 항구 마을 관광 식당의 물회입니다. 동해안, 특히 경북 해안 지역의 전통 물회에는 되직한 고추장이 들어갑니다. 내다팔지 못하는 잡어를 대충 썰어 고추장 넣고 쓱쓱 비벼 먹었던 게 이쪽 동네 물회의 시작입니다.
경북 물회에는 물이 없습니다. 회무침처럼 채소와 잡어회, 고추장을 넣고 비빈 뒤 나중에 물을 붓습니다. 맛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경북 물회를 세 번에 나눠 먹습니다. 3분의 1은 회무침으로 먹고, 다른 3분의 1은 밥을 넣고 비벼 회덮밥으로 먹고, 나머지 3분의 1은 물을 부어 물회로 먹습니다. 태구가 제주 사람은 아닌 게 분명한데, 어느 바닷가에서 자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식탁의 초장통

제주도 서귀포시 보목항에서 먹은 자리물회. 보목항은 제주에서도 자리돔이 많이 나는 포구다. 손민호 기자
애초의 제주 물회는 자리물회 한 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자리돔으로 만든 물회를 이르지요. 제주 사람은 자리물회를 먹을 때 빙초산 한두 방울을 꼭 떨어뜨립니다. 아시다시피 빙초산은 음식이 아닙니다. 화학약품이지요. 그러나 제주 사람은 빙초산이 들어가야 물회 맛이 산다고 믿습니다. 저도 한 번 도전해봤다가 독한 냄새에 기절할 뻔했습니다. 대신 사과식초를 듬뿍 넣습니다. 식초 특유의 정신 번쩍 드는 향이 된장 누린내를 잡아줍니다. 빙초산(또는 식초)이 뼈째 썬 자리돔을 부드럽게 해주는 역할도 한답니다.
자리물회

자리돔. 제주를 대표하는 서민 생선이다. 지금이 제철로,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가 다 자란 것이다. 제주 전통 물회는 자리물회 한 가지였다. 손민호 기자
옥돔이 제주를 대표하는 고급 생선이라면, 자리돔은 가장 서민적인 생선입니다. 크지도 않습니다. 어른 손바닥만 합니다. 지금은 많이 줄었다지만, 옛날엔 정말 흔했답니다. 하여 조리법도 다양합니다. 회로도 먹고 구이로도 먹고 젓갈도 담가 먹습니다. 육지로 시집온 제주 여자가 입덧할 때 제일 많이 찾는 음식이 자리젓이랍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도 그랬답니다.

서귀포시에서 먹은 제주 전통 방식의 자리물회. 된장만 풀어 국물이 누렇고 자리돔은 뼈째 썰었다. 자리돔 위에 얹은 풀이 제피다. 손민호 기자
영화에서 재연이 “이모! 물회!”라고 했는데도 국물 누런 자리물회가 나왔다면, 그리고 재연이 아무렇지 않게 빙초산(아니면 식초라도) 뿌리고 제피까지 넣었다면 제 영화 별점은 달라졌을 겁니다. 그래도 ‘한라산’ 홀짝이는 장면은 좋았습니다.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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