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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속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블록체인 기술을 만들고 싶다" - 청년의사

블록체인하면 비트코인이 떠오르고 비트코인하면 혼란스런 암호화폐 시장부터 떠오르지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시작은 혁명적이면서 자유로운 철학적 사유와 맞닿아있다. 정부·기업·은행이라는 중앙권력의 통제와 감시에서 완전히 벗어나 개인 간의 자유로운 거래를 지향하는 사이퍼펑크(Cypherpunk)가 그 효시다.

탈중앙·탈권력을 외쳤던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어느새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욕망을 꿈꾸고 있다. 기업가의 말 한 마디에 암호화폐를 바탕으로 몇 조 단위 돈이 오가고, 미국 월스트리트를 비롯한 세계 금융가는 암호화폐를 '중앙'으로 불러들일지 격론이 벌어진다.

그러나 블록체인랩스 엄지용 대표는 암호화폐 이슈에 매몰된 최근의 블록체인 분야를 우려스런 시선으로 보고 있다. 블록체인 서비스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하던 암호화폐는 이제 블록체인 서비스의 발전을 저해하는 지경에 왔다. '쓰는 사람 따로, 돈 버는 사람 따로'로 사용자가 분리된 거다.

블록체인랩스가 개발한 독자 알고리즘 블록체인 '인프라블록체인(Infrablockchain)'은 암호화폐가 필요 없는 블록체인이다. 안정성과 확장성을 두루 겸비하고 암호화폐 시장이 아닌 공공기관과 기업체 등 실질적인 사회 서비스 제공자들을 주 타겟층으로 삼았다. 

엄 대표는 "인프라블록체인은 사회기반시설(infrastructure)과 머릿글자를 공유한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블록체인 기술을 만들고 싶다"고 그 출발점과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블록체인랩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백신 접종증명서 앱 개발에 적극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질병관리청과 협력해 정부 공식 전자 예방접종증명서 앱 'COOV'을 개발하면서 무상으로 기술을 제공했다. 회사가 바라는 '소득'은 다른 데 있다.  

엄 대표는 "백신 접종은 우리 일상과 아주 밀접하고 한 번에 수백, 수천만 명의 경험자를 얻을 수 있다. 이번 사업을 통해 '블록체인이 우리 삶을 이롭게 바꾼다'는 인식이 자리잡아야 블록체인 기술의 생명력도 강해진다"고 강조했다.

블록체인랩스 엄지용 대표는 공공기관과 협력을 통해 블록체인 분야의 확장을 꿈꾸고 있다. "사회 여러 분야와 함께 개발하고 기술을 나누고 싶어서" 이번 코로나19 전자 예방접종증명서 앱 개발 사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블록체인랩스 엄지용 대표는 공공기관과 협력을 통해 블록체인 분야의 확장을 꿈꾸고 있다. "사회 여러 분야와 함께 개발하고 기술을 나누고 싶어서" 이번 코로나19 전자 예방접종증명서 앱 개발 사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 질병청과 협력으로 화제가 되기 전까지 국내에 많이 알려진 회사는 아니었다.

우리 회사가 주로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보니 국내에선 신생회사로 여기는 분들이 많다. 우리 회사는 지난 2013년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시작됐다. 초기엔 P2P 기반 서비스를 하다가 2015년 퍼블릭 블록체인 이더리움(Ethereum)이 나오면서 이를 기반으로 미술품·부동산 자산 거래 플랫폼을 만들었다. 근데 서비스를 하면 할수록 안정적인 거래소 운영을 위해선 암호화폐에 의지하지 않는 자체적인 엔진 개발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별도 법인을 세운 게 여기 블록체인랩스다. 국내 사업은 지난 해 경상북도 의료용 대마(HEMP) 관리 사업으로 본격화했다.

- 이더리움이나 비트코인(Bitcoin) 모두 암호화폐인 동시에 블록체인 플랫폼 그 자체기도 하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 

암호화폐는 외부의 압력이나 내부 구성원의 사정에 상관없이 블록체인 시스템을 유지시킨다. 기본적으로 블록체인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움직인다. 내 컴퓨터에 내 전기비 써가며 블록체인에 참여하는데 아무 대가 없이 자원봉사하라고 하면 이 사람들이 그냥 컴퓨터 끄고 나가버리는 걸 막을 수 없다. 반대로 사용 수수료 같은 대가를 받지 않으면 아무나 들어와서 시스템을 공격하거나 과부하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하지만 실재하는 화폐를 수수료로 받으면 그때부터 시스템은 그 화폐를 발행하는 국가에 의존하게 될 거다. 이 때문에 자체적인 암호화폐가 필요하게 됐다.

따라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전세계적으로 이용되는 퍼블릭 블록체인의 알고리즘은 이런 암호화폐가 있어야 동작한다. 반면에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이런 암호화폐가 필요하지 않다. 리눅스 재단의 하이퍼레저 패브릭(Hyperledger Fabric)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특정 시스템만을 위해 구현된 블록체인으로 사전에 승인된 이용자만 참여한다. 퍼블릭 블록체인처럼 암호화폐의 영향을 받진 않지만 분산 데이터베이스처럼 유사한 기술보다 우위를 점하지 못한 게 문제다.

- 굉장히 치열한 고민 속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해온 것 같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이런 고민이나 기술력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한때 가상으로 고양이를 키워 거래하는 블록체인 게임 '크립토키티(CryptoKitties)'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기반이 되는 이더리움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킬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얼마가지 못했다. 게임 시스템을 유지하고 플레이하기 위해선 수수료로 이더리움 화폐를 계속 지불해야 하는데 이더리움 가격이 점점 상승하니까 크립토키티 이용자들이 이걸 감당하지 못한 거다.

이렇게 암호화폐 채굴이란 경제적 목적으로 참여하는 이용자와 시스템으로서 블록체인을 이용하는 사람들 간에 이해 관계가 상충하면서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서비스 개발에 장애가 됐다.

현재 블록체인 분야가 안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거다.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차세대 기술이라면서 '앞으로 가치가 더 뛸 거다'란 기대감까지 부추겨 암호화폐 가격은 치솟는데 정작 이 암호화폐 외엔 기술적 쓰임새를 증명한 사례가 없다. 그러다보니 암호화폐와 동일시 될 정도로 사람들이 블록체인에 대해 잘 모르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만 쌓였다.

- '인프라블록체인'은 암호화폐가 필요하지 않은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처음부터 공공기관이나 기업을 주 타겟층으로 설정했다. 질병청과 전자 예방접종증명서 사업을 협력하는데 이런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이번 협력은 우리가 블록체인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졌다기보단 정부가 사용하기에 가장 알맞은 형태를 고민하고 구현하면서 성사됐다고 본다. 인프라블록체인은 퍼블릭 블록체인과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장점을 모두 지녔다. 확장성을 충분히 갖추면서도 시장과 연동된 암호화폐가 필요 없기 때문에 정부나 기업이 도입하기 더 쉽다. 우리는 암호화폐나 채굴권을 많이 보유한 사용자가 아니라 실제 서비스 이용자에게 운영권을 부여한다. 분리돼있던 서비스 이용자와 ‘채굴자’의 이해가 동일해지는 거다. 또한 기존 암호화폐가 아니라 법정화폐와 연계된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을 이용해 안정성을 강화했다. 이용자가 시스템 수수료로 지불할 코인을 발행할 때 미리 자금을 금융기관에 예치해두고 동일한 가치의 코인을 지급 보증받는다.

이렇게 인프라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지난 해 12월에 프로토타입을 완성한 뒤 질병청을 찾아가 시연했다. 앞서 해외 4~5개국과도 예방접종증명서 관련 사업을 논의 중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분명 수요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앞으로 디지털 형식의 접종증명서가 꼭 필요할 거고 우리는 독자적인 알고리즘을 개발해 정부가 원하는 형태의 블록체인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에는 즉각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몇 달 뒤 질병청에서 협력해보자는 연락이 왔다. 

- 질병청과 협력해 만든 정부 공식 전자 예방접종증명서 'COOV' 앱이 출시됐다. 그럼 이제 공항에서 COOV 앱을 제시하면 '백신 여권'으로 쓸 수 있는 건가.

우리가 먼저 나서서 '백신 여권'으로서 역할을 말하긴 아직 조심스럽다. 예방접종증명서가 여권 기능을 하기 위해선 국가 간 정책적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예방접종 데이터베이스를 체계적으로 구축한 나라가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런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질병청이 발행하는 전자 예방접종증명서를 쓰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의료진이 접종 내역과 날짜를 직접 적은 한 장짜리 종이가 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럼 우리나라 국민이 해외에 들고 나가는 이 전자증명서와 해외에서 들어오는 수기 증명서를 동일하게 인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또한 모든 나라가 전자 예방접종증명서 방식을 채택하더라도 데이터를 주고 받는 방식이나 원본 증명 방식을 합의하지 않으면 여권으로써 기능을 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런 문제는 정책적으로 다뤄야 할 영역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기술 준비를 마치고서 그 가능성과 방향을 논하는 것과 아무것도 없이 막연한 희망사항을 늘어놓는 건 본질적으로 다르니 우린 먼저 기술 마련에 집중한 거다.

- 정부가 COOV 앱 도입을 시사할 때부터 데이터 유출이나 정부의 사용자 감시 가능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질병청 데이터가 블록체인이나 QR코드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유출될 거란 우려도 나왔다.

블록체인 기술은 오히려 그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됐다. 기존 방식대로라면 질병청에서 데이터를 받고 다시 질병청에 원본 증명을 요청하면서 이 데이터를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목적으로 쓰는지에 대한 정보까지 넘겨줘야 한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빅브라더'처럼 국가의 감시나 추적은 이런 방식에선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중앙에 모든 데이터를 보내지 않아도 스스로 원본 증명이 가능하다. 블록체인 안에 이 증명서가 조작되지 않은 원본임을 증명하는 데이터가 들어 있다. 접종증명서를 주고받는 당사자 외 제3자는 블록체인을 돌파하지도, 이 데이터를 해석할 수도 없다. QR코드도 마찬가지다. QR코드로 출입 기록을 남기는 게 보편화되면서 QR코드로 '추적'을 연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COOV에서 쓰는 QR코드는 데이터가 오가는 비밀 통로 개념이다. QR코드 자체에 개인의 데이터가 담겨 있지는 않다. 

- 데이터가 한 군데 모여있을 때 발생하는 위험이나 그에 대한 두려움을 블록체인 기술이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아직 우리 사회에 ‘내 데이터를 직접 보관하고 스스로 관리한다’는 관념이 많이 퍼지지는 않았다. 기관과 기업들도 각종 무료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 데이터를 손쉽게 넘겨받아 왔다. 하지만 이제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처럼 데이터 중앙 집적이 당연시됐던 분야도 연합학습(federeated learning) 같이 데이터 분산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국내도 지난 해 데이터3법을 계기로 ‘마이데이터’ 사업이나 ‘자기주권신원(Self-sovereign Identity)’ 같은 개념이 일반에 많이 소개됐다. 앞으로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를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고자 하는 욕구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이제껏 버튼 하나로 데이터 사용 동의를 얻어왔던 기업과 기관들도 '왜 내 데이터를 남의 이익을 위해 넘겨야 하느냐'거나 '데이터를 넘겼을 때 안전한지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온다. 사회가 거대한 변화 앞에서 길을 찾을 때 블록체인 기술이 답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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