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C “올림픽 경기장, 정치적 표현 안 돼”
68년 ‘블랙 파워 경례’ 주인공 선수촌 쫓겨나
박종우 선수는 메달 수여 보류당하기도
어디까지가 정치적 표현이냐는 논쟁적
20일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기 구조물이 설치된 일본 도쿄 오다이바의 모습. 도쿄/AFP 연합뉴스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육상 남자 200m 결승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미국 흑인 선수 토미 스미스, 존 카를로스는 시상식 때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손을 치켜들었다. ‘블랙 파워 설루트(경례)’라 불리는 이 침묵 시위는 전 세계를 향해 미국의 인종차별을 알렸다. 이 장면을 찍은 사진은 20세기를 상징하는 사진 중 하나로 남았다. 또한, 올림픽 때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어디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논의에 불을 붙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1일(현지시각) 50년 넘게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경기장에서 정치적 표현 금지 및 처벌 방침을 확인하는 결정을 내렸다. 국제올림픽위는 오는 7월23일 개막하는 도쿄올림픽에서 “올림픽 관련 시설과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지역 안에서는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시위나 선전(프로파간다) 활동을 금지한다”는 올림픽 헌장(제50조 3항)을 유지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블랙 파워 설루트’ 같은 시상식 시위나 미국 스포츠 선수들이 최근 인종차별 반대 의미로 했던 ‘무릎 꿇기’를 하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국제올림픽위는 지난해 12월부터 선수 3547명을 대상(응답자 기준)으로 이 문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올림픽 경기장과 공식 행사에서 각각 71%와 69%가 자기 견해를 밝히거나 행동으로 보이는 게 “부적절하다”고 답변했다. 또한, 67%는 ‘블랙 파워 설루트’처럼 시상대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에 “부적절하다”고 답변했다. 짐바브웨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 출신인 커스티 코번트리 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장은 “대부분의 운동선수는 경기장, 공식 행사, 시상식에서 (정치적) 견해를 밝히거나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며 “올림픽 출전 선수로서 이런 행사들은 내 마음속에 매우 구체적인 기억들로 남아있다. 그래서 내가 경쟁할 때를 생각해본다면, 나는 주의가 분산되지 않기를 원할 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고 말했다. 커비 위원장은 이번 결정을 어길 경우에 대한 “비례적” 처벌안이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검은 장갑을 낀 채 시상대에 올랐던 토미 스미스(가운데), 존 카를로스(오른쪽). <한겨레> 자료 자신
주먹 시위부터 독도 세리머니까지…올림픽 표현의 자유 역사
국제올림픽위의 이번 결정을 어길 경우 어떤 처벌을 받을까? 국제올림픽위는 권고 사항으로 “적정 절차를 따르고 비례적으로 경우에 따라” 징계한다는 정도만 밝히고 있다. 징계 수위는 사건마다 크게 달랐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인 1968년 ‘블랙파워 설루트’ 주인공들은 혹독한 처벌을 받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이들을 선수촌 밖으로 추방했다. 다만, 메달은 박탈되지 않았다. 미국올림픽위가 이들을 미국 올림픽·패럴림픽 명예의 전당에 헌액한 것은 2019년에 들어서였다. 한국 축구선수 박종우는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일본과의 3~4위전에서 2-0으로 승리한 뒤 관중으로부터 건네받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종이를 들고 경기장을 내달렸다가, 올림픽 동메달 수여를 보류당했다. 박종우 선수는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는 한 해 뒤인 2013년에야 박 선수에게 메달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런던올림픽에서 오스트레일리아 헤비급 복싱선수 데미언 후퍼는 32강전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을 상징하는 애보리진 국기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어 논란이 일었지만 메달 보류 같은 징계를 받지는 않았다. 올림픽에서 정치 표현 논란은 대회 때마다 반복돼왔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때는 브라질 법원과 국제올림픽가 충돌했다. 2016년 5월 브라질 시민들이 지우마 호세프 당시 대통령 탄핵 사태와 관련해 경기장에서 시위를 벌였다가 쫓겨나자 국제올림픽위 등을 제소했는데, 브라질 법원이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판결했다.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에서 ‘독도 세리머니'를 펼쳤던 박종우 선수. 연합뉴스
국제올림픽위가 올림픽 헌장 50조3항 존치 여부를 재검토했던 이유는 지난해 흑인 인권운동 캠페인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계기로 올림픽에서 정치적·사회적 의견 표시 허용 범위에 대한 논란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미국올림픽위는 지난해 12월 선수들이 국가 연주 때 주먹을 들거나 무릎 꿇기를 해도 징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같은 문구가 적힌 옷을 입는 것도 허용했다. 국제올림픽위가 낸 성명을 보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같은 문구에도 호의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금지한다는 명확한 언급은 없다. 국제올림픽위는 선수들이 “포용적 메시지’를 적은 옷을 입도록 권고한다고 밝혔다. 예시로 든 단어들은 “평화, 존중, 연대, 포용, 평등”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지지한다”며 “선수들은 올림픽 기자회견이나 인터뷰, 팀 모임과 디지털이나 전통적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기장 밖에서 정치적 의사표현은 허용하지만 경기장 내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정치적 의사 표현인지 그리고 표현의 자유 허용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도쿄올림픽에서 정치적 의사 표현을 둘러싼 사건이 논란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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