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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우연히 들어선 골목, 그곳에서 만난 설렁탕 - 한겨레

‘미성옥’. 사진 백문영 제공
개운하고 상쾌한 아침을 맞아본 지 얼마나 되었을까? 낮에는 반주, 밤에는 술판을 벌이고 다니는 날이 길어지면서 아침은 고통과 절망, 후회가 오가는 번뇌의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진짜 술 안 마시고 얌전하게 살겠다’고 다짐하고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명동 성당 앞에서 내려 한참을 걸었다. 그 많던 인파가 끊긴 지금, 명동은 어쩐지 적막하고 서늘했다. 칼국수와 곰탕, 돈가스와 만두, 훠궈 중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며 정신없이 걷다 낯선 골목으로 밀려들어 갔다. ‘길 잘못 들었다’ 싶을 때쯤 기적같이 눈앞에 나타난 노란 간판 ‘미성옥’. 하도 먹고 다니다 보니 이제는 정말 식신이 나에게 강림했을지도 모른다. 서둘러 검색을 해보니 무려 50년이 넘은 설렁탕 노포(오랜된 가게)에 사람들의 찬사가 이어지는 식당이었다.
‘도마 유즈라멘’의 라멘. 사진 백문영 제공
설렁탕과 수육이 메뉴의 전부다. 설렁탕을 주문하면 깍두기와 배추김치가 바로 깔린다. 고기 육수를 닮은 듯한 진득한 깍두기 국물이 반가웠다. ‘한국식 패스트푸드’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주문하자마자 바로 설렁탕이 나왔다. 송송 썬 파를 가득 띄운 맑은 국물부터 국물에 담겨 있는 고소한 머릿고기, 살짝 불어 있는 소면 사리까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완벽한 설렁탕이었다. 소면부터 빠르게 건져 먹고 국물과 깍두기까지 먹고 나서야 뭔가 빠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소주를 주문해서 한 잔을 입안에 털어 넣고서야 알았다. 미식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건은 역시 알코올이었다. 설렁탕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을 먹고 나니 이제야 ‘오늘의 음주’를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슬슬 올라오는 취기를 핑계 삼아 창경궁을 지나 지하철 안국역까지 걸었다. ‘아까 뭘 먹었지’ 싶을 정도의 허기가 몰려와서 잽싸게 안국역 인근 ‘도마 유즈라멘’으로 향했다. 홍대에 있는 소고기구이 전문점 ‘도마’가 운영하는 ‘도마 유즈라멘’은 유자향이 나는 일본 라멘을 판매한다. 해장 겸 안주 삼아 시오라멘을 주문하고 생맥주를 들이켰다. 소금으로 간을 한 닭고기 국물에 매운 다진 양념을 듬뿍 얹은 모양새다. 유자향이 솔솔 나는 시원하고 매콤한 국물과 통밀로 만든 얇고 쫀득한 면의 조화는 기품이 느껴졌다. 국물, 맥주, 면, 고기 고명, 다시 국물과 맥주로 반복되는 리듬이 흥겨웠다. 이렇게 또 반주와 음주로 점철된 하루였지만, 딱히 반성하고 싶지는 않았다. 알코올은 그저 미식을 즐기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닌, 나의 인생 친구이자 평생 동반자이니 어쩔 수 없었을 뿐이다. 백문영(전 <럭셔리> 리빙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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