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하사의 빈소 모습. 변 하사의 아버지는 영정사진으로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가 지난해 인터뷰 때 찍은 사진을 골랐다. 임태훈 제공
“한국군 내에 트랜스젠더와 성 소수자가 없는 게 아닙니다. 정부가 파악하지 못했고, 보호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트랜스젠더 미군 네이트 홍 대위는 말합니다. 군인 수가 160만명에 이르는 미국에선 1만5천여명의 트랜스젠더가 복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60만명이 복무하고 있는 한국에선 단 한명의 트랜스젠더도 복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정말 한국군엔 단 한명의 트랜스젠더도, 젠더 디스포리아(성별불일치)를 겪고 있는 군인이 없었던 걸까요? 네이트 대위의 말처럼 그들은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숨어 있을 뿐입니다. 단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한겨레>는 3월 31일,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아 세 명의 트랜스젠더 군인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들은 트랜스젠더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평등하게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변희수 하사의 죽음은 제 이야기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을 바꾼 뒤 미군 치의관으로 복무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네이트 홍(31) 대위는 30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변 하사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는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군으로 복무할 생각에 행복했을 변 하사를 생각하면 슬픔이 복받쳐 오른다”며 “변 하사에게 군 복무를 허락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는 사실을 한국 정부가 깨닫고, 그녀의 죽음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족과 시민단체가 진행 중인)변 하사의 복직 소송에서 이겨 명예를 회복하고, 트랜스젠더가 군 복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네이트 대위는 군 의료장학금(HPSP · Health Professional Scholarship Program)을 받고, 노스캐롤라이나 치과대학에서 공부하며 군인을 꿈꿨다. 군 의료장학금은 상대적으로 비싼 의대 등록금을 정부에서 지원하고 매달 일정 금액의 생활비를 지원받는 대신 졸업 후 군대에 의무복무를 하는 제도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민자 2세인 나에게 준 기회에 보답하고 국가에 헌신하는 미군으로서의 자부심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2학년인 2015년 성전환 수술을 받으며 군인의 꿈을 포기할 뻔했다. 네이트 대위는 어렸을 때부터 젠더디스포리아(성별 불일치)를 경험하며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왔다. 입대를 거부당하고 장학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공포에도 불구하고 더는 젠더디스포리아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부모의 지지를 받으며 생물학적인 성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젠더(사회보장정보, 출생기록 등)도 남성으로 바꿨다. 다행히 2016년 6월 오바마 정부는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원하는 성으로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네이트 대위는 대학 졸업 뒤 2017년 여름 무사히 군에 입대했다. 2018년 6월 한국의 평택, 주한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로 파병을 온 네이트는 부모님의 고국인 한국에 와서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안락함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오래 머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성 소수자에 대해 포용적이지 않은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다. 네이트 대위는 “만약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성 정체성을 찾지 못했거나 그 과정이 훨씬 힘들었을 것 같다. 변 하사와 꼭 같은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가깝게 지내는 미군 동료가 아니면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차별에 노출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한국인 성 소수자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는 여전히 개인이나 가족에 쏟아지는 사회적 낙인, 안전에 대한 위협 때문에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이트 대위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한국의 전통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한국사회는 다양한 성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포용력이 부족하다”며 “퀴어축제가 매년 개최되면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촉구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성 소수자들은 혐오여론과 낙인이 두려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변 하사가 성전환 수술을 받고 강제 전역조치 되는 과정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다 지난해 6월 파병 기간이 끝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군의 트랜스젠더 군인들의 삶도 평탄치는 않았다. 네이트 대위가 입대한 지 얼마 안 된 2017년 7월 2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군사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받았다. 우리 군대는 승리에 집중해야 한다. 군부대 내 트랜스젠더가 초래할 의학적 비용과 기할 엄청난 의학적 비용과 혼란을 떠안을 수 없다”고 썼다.
그는 이듬해 트위터 글을 실행에 옮겼다. 2018년 3월 행정각서를 통해 트랜스젠더에 대해 군 복무 자격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미국의 많은 트랜스젠더 군인들과 입대를 희망하는 트랜스젠더들은 경악했다. 당시 네이트 대위는 혹시나 부대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큰 두려움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입대했는데 부대에서 쫓겨나면 막대한 금액의 장학금을 반환하고, 빚더미에 앉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해야 했다”며 “다행히도 기존에 입대한 트랜스젠더에 대해선 문제 삼지 않았으나, 신규 입대는 차단하면서 큰 혼란을 빚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텍사스주에서 백신 수송 업무를 담당하는 나탈리 로즈(32) 대위(남성→여성)도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트럼프의 트위터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며 “트럼프는 단지 자신을 지지하는 보수층을 결집을 위해 그런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치인들의 발언이나, 관련 법·제도가 바뀔 때마다 자신들이 ‘지워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포에 휩싸였다고 했다. 자연스레 변 하사의 마음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나탈리 대위는 “변 하사를 만난 적은 없지만 미국에서도 단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입대를 거부당하거나 전역해야 했던 사람들을 만났었고, 변 하사처럼 목숨을 끊은 사람도 알기 때문에 (변 하사의 마음을)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별은 계속 되도…제도적 보장은 마음의 평화 줘”
“미국은 포용력이 있을 때 국내와 전 세계에서 더 강력하다. 자격을 갖춘 모든 미국인이 군복을 입고 나라에 봉사하도록 하는 것은 군대와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이다”(1월 2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성명) 미국의 트랜스젠더 군인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 뒤 다시 안정을 찾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월 25일(현지시각) 태어난 성별과 다른 성별로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과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다시 허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의 트랜스젠더 군인들은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성 소수자에 대한 낙인이나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네이트 대위는 “내가 트랜스젠더인지 모르는 동료들은 내 앞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 발언을 해 당혹스러운 경험을 할 때가 종종 있다”며 “성전환 수술 이후에도 호르몬 치료와 지속적인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부대 군의관에 따라 성 소수자 진료에 대한 지식·감수성의 편차가 커 어려움을 겪는 군인들도 많다”고 말했다.
미국에는 트렌스젠더 군인을 지원하는 비영리 인권단체 ‘스파르타’(SPART*A)가 있다. 브리 프람(41) 스파르타 부의장(공군 중령)은 소속부대와 무관한 개인의 견해라며 <한겨레>와의 서면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스파르타는 트랜스젠더 군인(현역·전역)과 군인가족의 권리를 보호하는 단체로 보건의료 문제를 포함한 상담서비스도 제공한다”며 “오랜 투쟁을 거쳐 미국에서 트랜스젠더의 입대·복무가 허용됐지만 여전히 부대 안에서 성 소수자 군인이 겪는 차별과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리 중령은 2001년 9·11 테러를 목격한 뒤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2003년 군에 입대한 뒤 젠더디스포리아 판정을 받고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꿨다. 브리 프람 중령은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에도 한참 동안 동료들에게 수술 사실을 알리지 못했는데 이 과정에서 큰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혹시 군 생활에 불이익을 받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고, 동료에게 들키지 않으려 전전긍긍하는 사이 업무능력도 현격히 떨어졌다”고 털어놨다. 2016년 오바마 정부에서 트랜스젠더 군 복무를 합법화하자 그는 용기를 냈다. “한참을 고민하다 동료들에게 성전환 수술 사실을 설명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놀랍게도 모든 동료가 내 사무실로 와 손을 맞잡고 존경을 표했어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이후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고 한다. 정부에서 이들의 존재를 인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브리 중령은 “성 소수자 지휘관으로서 부대원들의 힘든 일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고, 차별과 폭력이 없는 부대를 만들 수 있었다”며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금지하고, 군인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도록 하는 것은 큰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군 전체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트랜스젠더도 평범한 ‘보통사람’으로 차별받지 않고 군 복무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미국 1만5천명 트랜스젠더 군복무…세계적으로 증가추세 미국도 처음부터 트랜스젠더의 입대와 복무를 허락했던 것은 아니다.
1960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발동한 행정명령에 따라 성소수자의 연방정부 공무원 채용을 금지했고, 1963년엔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금지하는 조항을 군 규정에 포함했다. 이러한 조처는 젠더디스포리아와 트랜스젠더를 질병의 일종으로 간주하던 당시의 보건의료체계와 사회적 낙인이 맞물린 결과였다. 그러나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2000년 이후 성소수자 인권이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고, 드러나지 않았던 부대 내 트랜스젠더와 젠더디스포리아 당사자들의 문제가 표면위로 떠올랐다. 결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년여 기간의 연구와 토론 끝에 2016년 성소수자 군복무를 제도적으로 보장했다. “저는 굉장히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성향이나 지향에 상관없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그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그들이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다면 다른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미국의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2015년 2월 애쉬 카터 국방부 장관이 공개발언했던 내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성 소수자의 군 복무에 대해 포용적인 자세를 나타냈던 오바마 행정부는 이듬해 6월 30일 입법으로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공식 허용했다. 자신이 선호하는 성별로 입대 전 18개월 동안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면 누구나 입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군 복무 중에 성전환을 원하면 절차에 따라 할 수 있도록 하고,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보건의료서비스를 국방부가 지원토록 했다. 이에 트랜스젠더 군인이 늘기 시작했다.
미국의 독립 공공정책 싱크탱크인 팜 센터(Palm Center)가 2018년 펴낸 자료를 보면, 현역으로 복무하는 트랜스젠더 군인의 수는 1만4700명(8980명 현역, 5725명 예비역)에 이른다. 세계적으로는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추세다.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에 차별을 두지 않고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2021년 현재 이스라엘, 독일, 영국, 스페인, 프랑스, 호주, 오스트리아, 벨기에, 캐나다 등 21개국에 이른다. 쿠바와 타이는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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