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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신사의 속박에서 벗어난 시간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크로노스’ 대신 ‘카이로스’로 시간의 주인 될 수 있어
모든 존재에 귀 기울일 때 만나게 되는 찰나의 아름다움들
독일 하노버 미하엘 엔데 광장에 있는 모모의 조각상. 이 세상 모든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모모는 커다란 귀를 껴안고 어디선가 우리의 말을 언제라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독일 하노버 미하엘 엔데 광장에 있는 모모의 조각상. 이 세상 모든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모모는 커다란 귀를 껴안고 어디선가 우리의 말을 언제라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책&생각] 정여울의 문학이 필요한 시간 (28) 문학, 단 한 번뿐인 시간을 발견하는 눈 누군가 내게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유토피아는 어디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 나오는 오래된 원형경기장을 떠올릴 것이다. 이 지극히 평범한 마을에 혜성처럼 나타난 모모라는 소녀가 살고 있는 그곳. 한때는 원형경기장이었지만 이젠 폐허나 다름없는 버려진 장소가 왜 내 마음속에는 유토피아로 각인되어 있는 것일까. 샹그릴라처럼 너무 완벽해서 ‘그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이야’라는 생각에 빠지게 하는 유토피아보다는, ‘어쩌면 정말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조금은 현실적인 꿈을 꾸게 하는 곳이 바로 모모의 원형경기장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모를 알 수 없는 고아 소녀라고 판단하고, 누군가의 돌봄과 양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모모는 정말로 혼자 살 수 있다. 모든 사회적 편견을 덜어내고 나니, 모모는 행복하다. 부모에게 간섭받지 않고, 학교 공부에 시달릴 필요도 없으며, ‘어린애가 무슨’, ‘여자애가 어떻게’라는 식의 편견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모모, 그런 모모를 아무런 차별 없이 도와주는 마을 사람들. 폐허가 된 원형경기장에서는 모모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우정의 커뮤니티가 탄생한다.
모모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인 것뿐
사람들은 모모의 허름한 거처를 깨끗이 치워주고 정성껏 수리하며, 뚝딱뚝딱 책상과 의자를 만들어주고, 남는 침대와 담요를 가져다준다. 아이들은 모모를 위해 일부러 남긴 음식을 들고 찾아오고, 모두가 모모를 조금씩 돌본다. 그러나 훨씬 더 커다란 도움은 사람들이 모모로부터 받는 기적 같은 위로다. 모모는 세상 모든 것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재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특별한 재능이냐고 반박할 사람도 많겠지만, ‘저 사람이 나의 이야기에 온 마음을 다해 귀 기울이고 있구나’라는 믿음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지는 모모와 이야기해본 사람들만이 안다. 개, 고양이, 귀뚜라미, 두꺼비, 심지어 나뭇가지와 빗방울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모모. 친구들이 모두 떠나고 나서 혼자 원형극장의 둥근 마당에 앉아 있을 때는 우주가 들려주는 광대한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모. 그 침묵의 소리를 들을 때, 모모는 별들의 나라를 향해 한없이 열려 있는 거대한 귓바퀴 한가운데 앉아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우주의 침묵은 모모에게 그 자체로 영롱한 음악이었으며, 세계가 연주하는 그 아름다운 음악 소리, 즉 침묵의 소리를 들은 밤이면 모모는 유난히도 예쁜 꿈을 꾼다. ‘모모의 경청하기’는 어떤 힘을 지녔는가. 사람들은 모모에게 고민을 털어놓음으로써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닫고 그 해결책을 생각해내게 된다. 모모는 아무런 판단도 조언도 하지 않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완전히 귀 기울여 경청해주는 모모의 사려 깊음이 마치 티 없이 맑은 호수처럼 그들의 마음을 비춰주어 그들이 지닌 최고의 깨달음을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세상이 만들어지기 위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모모는 단지 사람들의 말을 놀라운 집중력으로 들어주기만 했고, 사람들은 모모와 함께 있는 시간 속에서 온갖 시름을 잊었을 뿐이다. 그들은 모모를 통해 다시 처음부터 인생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누구도 모모를 위해 일부러 돈을 쓰지 않았고, 다만 자신들이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어주며 아무도 무리하지 않았지만, 이토록 아름답고 풍요로운 세상이 만들어졌다. 어쩌면 유토피아를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막대한 예산이나 과도한 노력이 아니라 모모처럼 ‘타인의 이야기를 온 마음을 다해 들어주는 따스함’이 전부인 것 아닐까.
회색신사의 마법에 사로잡힌 현대인들
이 지극히 평범한 마을에 모모가 가져온 변화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모모는 침묵의 소리를 들을 줄 안다. 모모는 그 어떤 이야기라도 귀 기울여 들을 줄 안다. 모모는 시간의 향기를 맡을 줄 안다. 모모는 아무렇지도 않은 시간을 찬란하고 눈부신 시간으로 바꾼다. 모모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결코 분초를 다투지 않는다. 지금이 몇 시인지도, 앞으로 남은 시간이 몇 분인지도 중요하지 않은 세계.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에 마음껏 도취되어도 아무런 후회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는 시간. 그런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완전한 평온을 경험한다. 이들의 평화를 위협하는 적들은 ‘시간은행’을 관리하는 회색신사들이다. 회색신사들은 시간을 칼같이 나눈다. 쓸모있는 시간과 쓸모없는 시간으로. 회색신사들은 시간을 잔인하게 토막 내어 시간의 내장과 지느러미를 몽땅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다. 하지만 시간의 내장과 지느러미, 버려지는 그 부분들이야말로 시간의 정수 아니었을까. 그저 모모와 함께라면 아무것도 버릴 게 없는 완벽한 시간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시간을 저축해주겠다’는 회색신사의 꾐에 빠지자 자신들의 시간을 철저히 유용한 시간과 무용한 시간으로 분리하게 된다. 달콤한 몽상에 잠길 시간도 없다면, 모모처럼 사랑스러운 친구와 푸짐한 수다를 떨 시간도 없다면, 그들의 ‘쓸모있는 시간’이라는 것은 오직 ‘돈을 버는 시간’일 뿐이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만큼이나 무서운 것은 자기를 착취하는 자신의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우리 현대인의 무감각함이다. 최고의 효율성과 스펙으로 중무장한 완벽한 생산성의 신체로 스스로를 변신시키기 위해 자기를 ‘관리’하는 현대인들은 이미 회색신사의 유혹에 빠져버린 것이다. 쉬는 시간도 아까워하고 잠깐의 휴가기간에도 혹시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 불안해하는 현대인들은 회색신사의 불길한 마법에 사로잡힌 것이다. 회색신사의 시간이 크로노스(Cronos)의 시간이라면, 모모의 시간은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다. 회색신사의 시간은 수학적으로 계산되는 객관적 시간이다. ‘시간당 얼마예요’라고 환산할 수 있는 시간, 돈으로 환산할 뿐 아니라 얼마든지 돈으로 교환조차 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회색신사들의 시간이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주관적인 시간이기에 한 시간조차도 백년처럼 알찰 수 있고, 백년조차 한 시간처럼 빨리 지나가 버릴 수도 있다. 시계와 화폐로 계산되는 크로노스의 시간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그 빛깔과 향기를 바꿀 수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마치 사랑스러운 장난감처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시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효율적 시간이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오직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흘려보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에서 내가 완전히 행복하다면 그 시간은 향기로운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삶을 사랑하기에 모든 시간이 소중해진다
그리하여 카이로스의 시간은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에게만 내리는 축복 같은 시간, 삶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만 주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시간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시간이 소중해지는 것이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그 시간을 최고의 의미로 물들이는 시간, 그 시간을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수놓는 시간, 늘 당연하게 주어진 시간을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시간이다. 그것이 바로 모모의 시간이다. 우리는 시간의 천사 모모를 외롭게 혼자 두어서는 안 된다. 모모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선사하는 화신이기에, 정신 나간 아이들처럼 신나게 모모와 놀고, 마음의 ‘실드’ 따위는 치지 않는 순박한 어른들처럼 모모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넌 날 이해하지 못할 거야’라는 마음의 장벽을 치는 순간, 우리는 모모와 함께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이다. ‘당신의 시간을 저축해드리겠습니다’라며 접근하는 회색신사의 유혹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 모모는 시간의 쭉정이를 남겨두지 않는다. 모모는 시간을 완전연소시킨다. 모든 순간이 찬란한 의미로 넘쳐흐르기에, 한순간도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기에. 이 세상 모든 것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모는, 그 무엇도 ‘쓸데없는 것’으로 바라보지 않기에, 그 모든 존재에 깃든 찰나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들이마신다. 그 어떤 시간의 의미도 놓치지 않기에 모모의 시간은 남김없이 불태워짐으로써 오히려 아름다워지는 시간이다. 모모에게는 프랭클린 플래너가 필요 없다. 모모에게는 구글 스케줄러도 필요 없다. 그 어떤 시간표를 짜지 않아도 온전히 그 시간의 향기를 들이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모모는 혼자서 좌중의 관심을 독점하려 하지 않는다. 모모는 시간의 주인공이 되려 하지 않고, 시간 자체를 주인공으로 만든다. 그곳에 함께하는 그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그 누구도 ‘난 덜 중요한 사람이구나’라는 서늘한 느낌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오늘도 모모가 자신의 삶이라는 소중한 장작을 불태워 만든 시간의 모닥불 앞에서, 그 누구도 외롭지 않게, 그 누구도 구석에 홀로 웅크려 있지 않게, 서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소리로 들을 수 있기를. 모모가 불태우는 시간의 모닥불 곁에 있으면 우리 모두가 함께 따사로워진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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