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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평검사들의 비판, 뼈아프게 생각해야 / 석진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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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환ㅣ이슈 부국장 “요즘 젊은 검사들은 그냥 직장인 같아. 월급쟁이 모범생, 생계형 직장인. 우리 때는 밤을 새워서라도 나쁜 놈들 잡고, 내 돈 써가며 수사도 하고 그랬는데, 이젠 그런 분위기가 전혀 없어. 검사로서 자부심이나 사명감, 결기를 가진 후배 보기가 점점 힘들어졌고….” 검사 생활을 오래 했던 이들을 만난 자리에서 종종 듣는 이야기다. 대체로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과 다른,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에게 느끼는 당혹감인 듯했다. 대한민국 어느 집단에서나 세대 간극은 존재하지만, 검찰은 유독 상명하복과 검사동일체 문화가 강한 조직이라 그들이 느꼈던 이질감은 더 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윗세대 검사의 이런 촌평들에 나는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여줬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속마음으론 ‘다행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반겼다. 비대한 권한을 가진 검찰의 역사를 봤을 때 사명감이나 결기는 그 반대편 덕목과 종이 한장 차이였다. 검사로서 자부심이나 사명감은 과한 공명심으로 변질되기 쉽다. 결기 있게 대처했다고 스스로 여긴 일들이 곧 무리한 수사로 이어지는 장면도 많았다. 검찰개혁을 위해 손질 중인 많은 제도는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와 결합해야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 선배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젊은 검사들의 모습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직에 있는 한 검찰 간부의 다음과 같은 설명도 참고할 만하다. “수사·근무 환경이 우리 때와 달라졌어요. 증거 챙기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고요. 절차와 규정 지키는 게 중요하니 요즘 검사들은 무리하거나 경력에 오점 남길 일은 안 하려고 해요. 튀거나 잘 나서지도 않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3년, ‘검사와의 대화’로 상징되는 평검사들의 첫 공개 집단행동을 떠올려보면, 2020년의 평검사들의 태도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2003년 당시 평검사들은 “검찰 조직문화를 존중해달라”며 대통령의 인사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기라는 반헌법적 황당한 요구를 했다. 그에 반해 2020년 평검사들은 검찰권 축소와 관련된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안 통과 때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총장의 측근을 철저히 배제했던 인사 때에도, 총장을 겨냥한 수사지휘와 감찰 지시가 거듭되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주 전체 99%가 넘는 평검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그래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이들의 성명서는 장황하지 않았다. 검찰총장 직무정지와 징계청구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만 지적했다. 하지만 절차적 정당성이야말로 평검사들이 일선에서 피의자를 대할 때 금과옥조처럼 지켜야 할 원칙이자, 행정부로서 법무부가 지켜내야 할 핵심 가치라는 점에서 집권 세력과 추미애 장관은 이들의 의견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단순히 소속 부처나 집단 이기주의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특히 추 장관은 더 늦기 전에 책임을 지는 게 맞다. 윤석열 총장을 겨냥한 추 장관의 조급하고 허술한 대응에 이미 법원과 검찰 구성원 전체, 심지어 장관 자신이 위촉한 법무부 감찰위원회 전원이 등을 돌렸다.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추 장관은 정치적으로 봐도 실패했다. ‘윤석열 사단’으로 대표되는 수사, 인사, 패거리 문화에 동의하지 않았던 검사들조차 장관에 맞서는 검사동일체로 만들어놓았다. 그사이 여론은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검찰개혁이란 목표가 그를 향해 가는 과정의 엉성함으로 인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이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가진 거대한 권력집단이라고 하더라도, 개혁이 그 대상 전체를 배제하는 과정이어서는 곤란하다. 절차를 중시하는 평검사들, 개혁에 동의하는 합리적인 이들마저 떠나보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늦었다 싶을 때는 이미 늦은 게 맞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과 대통령이 임명한 총장의 대결로 이미 정부는 많은 걸 잃었다. 그래도 그 자리에서 멈춰서는 게 최악은 피하는 길이다. 더 깊은 수렁이 설마 있겠냐 싶지만, 우리가 수없이 봤던 정권 후반기처럼 지금 상상할 수 없는 수렁은 언제나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일단 멈춰 돌아보고, 반문하고, 우군을 설득해 천천히 여론과 함께 가야 한다.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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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02, 2020 at 04:43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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