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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칼럼] 진보정부에서 국방비가 더 늘어나는 까닭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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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했는데도 ‘안보에선 보수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 심리는 여전히 진보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는 듯하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도,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도,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도 “문재인 정부에서 국방비는 더 늘었다”고 자랑한다. 이 틈새를 비집고 전략목표에 어긋나고 효과도 불분명한 아이언돔 같은 사업이 끼어든다.
국방부가 2021~2025년 국방중기계획을 수립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북한의 수도권 공격 핵심 전력인 장사정포를 막을 ‘한국형 아이언돔' 구축을 위한 개발에 착수하는 등 요격 능력 강화에 방점을 뒀다. 국방부 제공/연합뉴스
국방부가 2021~2025년 국방중기계획을 수립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북한의 수도권 공격 핵심 전력인 장사정포를 막을 ‘한국형 아이언돔' 구축을 위한 개발에 착수하는 등 요격 능력 강화에 방점을 뒀다. 국방부 제공/연합뉴스
북한 장사정포 요격을 위한 한국형 아이언돔 구축과 경항모 도입. 국방부가 지난 10일 발표한 국방중기계획의 핵심 사업들이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방위력 개선에 100조원 등 총 300조원의 국방비가 투입된다. 미-중 신냉전과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 속에 한국도 ‘자주국방’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엄청난 국민 세금을 투입하는 군비 강화는 분명하게 실질 성과로 연결돼야 하고, 남북관계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자칫 한반도 평화와 군축이라는 큰 줄기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 개발한 아이언돔은 헤즈볼라 같은 민병대 수준의 세력이 간헐적으로 쏘는 로켓과 포탄 공격을 막는 요격시스템이다. 휴전선 부근에 배치된 북한 장사정포에서 분당 수백발씩 쏟아질 포탄을 막는 데 과연 효과적일지 많은 전문가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대기권 밖에서 소련 핵미사일을 요격한다는 전략방위구상(SDI, 일명 스타워즈)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싸고 가장 비현실적인’ 군사계획이란 소리를 들었다. 수도를 세종시로 옮기려 한다는데, 그래도 서울 방어용 아이언돔이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4일 밤 가자지구에서 날아오는 로켓을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요격미사일이 추격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4일 밤 가자지구에서 날아오는 로켓을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요격미사일이 추격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더 중요한 건, 아이언돔을 핵심 사업으로 제시하면서 현 정부 들어 내세운 국방전략 목표가 슬그머니 바뀌었다는 점이다. 2018년 12월 국방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국방개혁2.0’의 플랜비(B)는, 전략 목표를 ‘북한 위협 대응’에서 ‘전방위 원거리 위협 대응’으로 수정했다. 그런데 이번 국방중기계획은 다시 ‘북한의 단거리 위협 대응’을 주요 목표로 설정했다. 물론 2018년과 지금은 남북관계의 온도가 다르다. 그러나 지금 남북관계가 냉각됐다고 큰돈을 들여 아이언돔을 구축한다면, 현 정부에서 남북간 군축은 후순위로 물리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국방중기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이라 곧바로 예산 투입으로 연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대통령 결재를 받은 계획안을 토대로 국방부는 기획재정부를 압박할 것이고, 2022년 대통령선거 일정을 고려하면 여야 모두 국방비 증액에 인색할 형편은 되지 못한다. 2017년 대선 후보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와 유승민 후보가 누가 더 국방비 증액에 적극적이었나를 놓고 설전을 벌인 건 상징적이다. 유승민 후보가 “내가 국회 국방위원장일 때 누구보다 국방 예산을 많이 투입했다”고 하자 문재인 후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노무현 정부 때 국방비 증가율이 더 높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보수정부보다 진보정부에서 국방비는 더 늘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방비는 연평균 8.9% 늘어난 데 비해, 이명박 정부는 6.1%, 박근혜 정부는 4.1% 증가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간 국방비 증가율은 약 7.5%로 역시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높다. 여기엔 ‘진보정부에선 안보가 불안하다’는 보수의 공세에 대응해야 한다는, 그래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오랜 트라우마가 깔려 있는 듯싶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안보에선 보수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 심리는 여전히 진보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러니 이낙연 전 국무총리도,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도,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도 “문재인 정부에서 국방비는 더 늘었다”고 자랑한다. 이 틈새를 비집고 전략목표에 어긋나고 효과도 불분명한 사업이 끼어드는 것이다. 현 정부 임기 내에 마무리짓기로 했던 전시작전권 전환이 또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전환조건 검증’을 이유로 늑장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에서 전작권 전환을 공식 제기한 게 벌써 15년 전 일이다. 그때는 미국이 한국군 역량을 높게 평가하며 2009년엔 전시작전권을 넘기겠다고 말했는데, 이제 와서 철저한 검증을 하겠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배경엔 미-중 신냉전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어쩌면 아이언돔이 핵심 방위계획으로 제시되는 것도 전작권과 무관치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작전권을 갖는다는 건 곧 ‘내 의지로 국방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맞춰 자원을 배치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뜻한다. 수동적인 체제에 익숙하면 어떤 무기체계가 중장기적으로 한국군의 미래에 부합할지 창의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전략목표나 실효성에서 의문이 드는 아이언돔 같은 사업이 국방계획 간판으로 등장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내후년 봄이면 다시 대선이다. 그때는 “효과가 불분명한 국방비를 줄여서 국민의 의료·복지 서비스를 개선하겠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대통령 후보를 볼 수 있을까. 박찬수 선임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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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2, 2020 at 01:11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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